비슬산
지난밤 비바람에 꽃은 떠났다.
우리는 그 꽃을 쫓아 산에 올랐으니 텅빈 산능성이가 야속할 밖에.
오랫동안 별러서 비슬산 산행에 동참했다.
비슬산은 나의 고향 청도와도 경계하고 있는 산이라서 항상 마음속에 두고 헤아렸다.
산은 언제나 그 자리에 있었고
그 산을 의지하고 있던 나무들과 꽃들은 계절을 바꿔가며 풍경을 다듬는다.
온 산에 참꽃보다도 사람꽃이 더 많다.
전국 각지에서 얼마나 모여 들었던지 발 디딜 틈이 없다.
그 틈새를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오를 수 있었던 건 산이 주는 준엄한 경건함 때문이리라.
땀을 쏟아내며 마음껏 꽃을 가슴에 담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도 한 몫 했을 터이다.
군데군데 아직 향기를 지우지 않은 꽃들이 있어 토라진 객들의 마음을 달랜다.
그저 고맙기만 하다.
너마저 없었다면 이 황량한 능선이 얼마나 더 애처로웠을까.
비슬산 정상 대견봉에는 정상을 기념하기 위하여 사진을 찍으려는 사람들로 붐빈다.
잠시의 시간도 여유가 없다.
왜 사람들은 정상석에 저렇게 사진을 찍으려고 목을 매는 걸까.
산에 다녀왔다는 흔적을 남기기 위해서겠지만.
한 평생을 살면서
내가 남긴 흔적이라는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굳이 나의 흔적을 남길 필요도 없을뿐더러
남긴다 한들 내 삶과 내 흔적과는 무슨 상관일까.
아무리봐도
인간들은 작은 흔적으로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려는 욕망을 가지고 있다.
그 욕망을 지우지 못하는한
끝까지 역사를 남기려한다.
그러다 지나치면 자칫 오욕의 흔적을 남길수도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것이다.
그럴바에는
흔적없이 사라지는 것이 더 현명한 일인지도 모른다.
가끔은
나도 내 흔적에 대한 욕심을 내어보기는 했지만
차츰 나이가 들면서
나는 나에 대한 한 점의 흔적도 남기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많이한다.
그럴수만 있다면 세상 살다간 보람이 넘치리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꽃이 사람들을 구경하고 있다.
웬일일까..
이 많은 사람들 때문에 산이 몸살하게 생겼다.
아마 꽃들은 비밀회의를 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내년에도 꽃을 많이 달지 말아야 사람이 줄어들거 아니냐..
그래야만 산도 숨 좀 쉬고..
꽃들도 조금은 편안하게 세상을 향하여 향기를 뿜을 수 있으리라.
대견봉에서 조화봉에 이르는 능선은 듬직하고 편안하게 이어진다.
그 능선에 서면
대구 달성과 경북 청도, 그리고 경남 창녕의 경계가 한 눈에 들어온다.
이름모를 노란 꽃..
앙증맞게 보일락 말락 피어있어
진달래를 희망했던 산객들의 시선에 차지 않지만 나름대로는 자신만의 아름다운 세계를 함축적으로 꾸미고 있다.
잠시
그에게 안부를 묻고 향기를 담아왔다.
참 어여쁜 꽃이다.
내가 잠시 당신의 동행이 될 수 있었음이 기쁘다.
신라시대 때 불국정토를 꿈꾸며 지어졌던 대견사지에는
삼층석탑만이 흔적을 이어가고 있다.
중국 당나라 황제가 절을 짓기 위하여 명당을 찾아다니다가 신라 현덕왕 때 이곳 비슬산에 절터를 잡고 삼층석탑과 절을 이었다 한다.
대국에서 본 절이라 하여 대견사라 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온다.
대견사는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되었으나 삼층석탑만 남아 있었다.
이 석탑도 흩어져 그 형체를 알 수 없을 만큼 되었으나
1986년에 복원하였다 한다.
대견사지 터에는
절의 흔적은 없고 참꽃제를 축하하는 락커가 목소리를 돋우며
행락객들의 심신을 다스린다.
이러나 저러나
이 땅에는 사람의 마음과 몸을 다스려야만 하는 지기가 존재하나 보다.
천년을 넘게
한발짝도 움직이지 않고 오직 이곳에 서서 세상사를 가슴에 차곡차곡 담았을
삼층석탑의 회한을 듣고 싶다.
그는 나에게 어떤 이야기를 들려주고 싶을까.
자못 궁금함이 길어진다.
아무 말 하지 않아도
나는 그의 마음을 알것 같다.
말하지 않아도
꼭 알려고 하지 않아도
세상은 멈추지 않는다.
산객이 쌓았을 작은 돌탑..
대견사지의 삼층석탑과 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탑이나
저탑이나
탑을 정성스레 쌓았던 사람의 기도를 묻고 싶지는 않다.
그냥..
내게 주어진 길대로 흔적없이 걷고 싶다.
1. 일 시 : 2009년 4월 26일(일)
2. 산행로 : 유가사 - 수도암 - 도통바위- 비슬산 정상(대견봉) - 조화봉 - 자연휴양림 - 소재사
3. 산행시간 : 4시간 30분
4. 위 치 : 대구 달성, 경북 청도, 경남 창원 일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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