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山 行

점봉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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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봉산

 

 설악을 지척에 두고 불쑥 솟아 올라 하늘에 닿는다.

 내마음 이었다.

 그렇게 하늘에 닿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무슨 소원을 말하고 싶었을까.

 한 해를 넘기기 전에 내가 걸어온 발자국을 되새기고 새로운 한 해를 맞기 위한 다짐으로

 나는 눈 덮힌 점봉산에 오른다.

 

 

진동리에서 곰배령으로 방향을 잡고 초입에 들어서면 추위에 얼어버린 팬션들이 향기를 잃고 널부러져 있다.

그들에게도 겨울은 차갑고 까칠한 현실이었나보다.

고드름이 땅에 닿도록 울고 있어도 돌봐주는이 없다.

여름에는 풋풋하게 사람들이 북적대었는데...

그들의 겨울은 너무 초라하다.

다시 여름을 기다리며 긴 고드름을 집고 힘겹게 버티고 있다.

 

 

 

 곰배령까지는 사람들이 벌써 다녀가서 산을 오르는데 그리 힘들지 않다.

 오히려 눈을 마음껏 밟아보는 느낌이 새롭다.

 곰배령에 오르면 사방이 확 틔인다.

 멀리 설악산도 보이고 주변의 모든 산들이 말없이 엎드려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풍차는 이제 이국적인 풍경이 아니다.

 멀리 풍차 두대...

 돌다가 쉬다가 게으름을 피우다가

 내가 지켜보니까 열심히 돈다.

 그래 열심히 돌아라..

 너에게 생명을 불어준 그 주인을 위해서라도 아낌없이 돌아라.

 나는 너에게서

 산을 오르며 잃었던 힘을 다시 얻는다.

 

 

 곰배령에서 인간의 발길은 멈췄다.

 모든 길은 눈속에 덮였고,

 우리는 새로운 길을 열어야 한다. 

 

 

 간혹 맷돼지들이나 산토끼들이 먹이를 찾아 눈속을 헤매었던 흔적만이 우리들에게 갈 길을 알려준다.

 때로는 그들이 내어준 길은 미로처럼 얽혀서 더욱 난감하게 하기도 한다.

 그들은 생존을 위하여 먹이를 채우려고 만들어 낸 길이고

 인간은 어지러운 삶을 투영하기 위하여 마음을 비우려고 찾아가는 길이다. 

 

 

 허벅지까지 푹푹 빠지는 하얀 세상에서

 산짐승들은 그들만의 길을 만들고

 인간은 우리들만의 길을 만들어야 할뿐,

 달리 핑계나 변명 같은 건 필요 없다. 

 

 

 

 

 하얀 눈과 차가운 바람만이 내가 견뎌내야 하는 삶인지도 모른다.

 아무도 없는 산 속에 까마귀 두어마리 적막을 깨고 행군에 지친 산인의 마음을 떠본다.

 그들에게 하얀 눈과 견디기 어려운 추위는 어떤 의미일까. 

 

 

 작은 점봉산을 거쳐 점봉산을 오르는 길에...

 눈길은 더욱 깊어져서 러셀을 하며 헤쳐나가기가 너무 힘겹다.

 허벅지까지 빠지는 눈이라 선두에 선 사람은 금방 지친다.

 날씨는 춥고 배는 고프고 ...

 길은 더욱더 힘들다.

 선두를 바꿔가며 러셀을 이어간다.

 그만큼 길은 더디다.

 

 저 너머

 설악의 대청봉과 중청봉이 고개를 내밀고 있다.

 하늘이 맑은 탓인지 손에 잡힐듯 가깝다.

 지친 우리를 응원한다.

 그래!

 조금만 더 힘내자.

 

 

 귀때기청봉도

 의젓하게 우리를 지켜보고 있다.

 

 아름다운 우리강산...

 너의 품을 오래도록 기억하리다.

 

 드디어 정상이다.

 언제나 정상은 뿌듯하지만 외롭다.

 정상에서

 지친 허기를 달래려고 도시락을 꺼내 들었지만

 다 먹을수가 없다.

 도시락도 얼었거니와

 손도 얼고 추워서 잠시라도 머물기가 어려워서 먹을수가 없다.

 도리가 없다.

 배고픔을 참을 수 밖에....

 

 

 하산하는 길에는

 햇빛도 따사롭다.

 내 마음에 자유와 풍만이 채워지면 자연도 풍요로워진다.

 

 

 

 갈비살을 몽땅 더러내 놓고 엎드려 있는 산

 그는 겨울이 있기에 더 아름답다.

 그것은 그의 참모습이기 때문이다.

 산은 언제나

 제 모습을 감추지 않는다.

 나는 그의 진솔함을 좋아한다.

  

 

* 일      시 : 2008년 12월 27(토)

 

* 산행시간 : 6시간 30분

 

* 산 행 로 : 진동리 - 강선골 - 곰배령 - 작은 점봉산 - 점봉산 (원점회귀)

 

* 위      치 : 강원도 인제군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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