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그동안의 나를 잠시 접어두고 또 다른 나를 만나러 가는 숭고한 의식이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자주 가는 편이 아니어서 여행을 떠날 때마다 남다른 설렘이 있다. 특히 해외여행의 경우에는 더욱 그러하다. 이번 의식에 동참한 사람은 내외, 딸 내외, 사돈 내외 여섯 명이다. 의식의 명분은 아내와 안사돈의 환갑 기념 여행이다. 예전에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조합이지만 요즘은 제법 흔해진 광경이다.
이번 여행의 전체적인 지휘는 딸 내외가 맡아서 진행했다. 여행지는 폴란드, 체코, 오스트리아 3개국인데 폴란드와 체코에서의 숙박은 딸 친구네 집에서 신세 지는 코스다. 경비를 줄이고 자유로운 여행을 위해 현지 렌터카를 이용하기로 하고 국제면허증을 준비했다. 우리 내외의 경비 부담은 아들 둘이 비행기 삯을 맡았다. 해외에서의 경비는 가족단위별로 일단 삼백오십만 원씩 부담하기로 결정했다.
인천공항에서 사돈내외를 만나 쇼팽공항행 12시 33분 발 LOT(폴란드 국영) 항공에 탑승 수속하고, 13시 좀 넘어서 이륙했다. 인천공항은 여전히 많은 비행기로 붐빈다. 비행기가 거의 2분 만에 한대 꼴로 이륙한다. 서울 지하철 배차간격보다 더 짧은 시간이다. 35년 전 공항 지을 당시에 단군이래 최대 토목공사라며 과잉 투자 논란으로 시끄러웠는데, 지금은 2 터미널까지 확장 운영하고 있으나 도저히 감당할 수가 없어 3 터미널 공사를 진행 중이다. 동북아 허브공항으로서의 역할을 단단히 하고 있는 셈이다. 중국의 홍콩 예속화가 한몫을 했을 것이다.
13시간 장거리 비행시간을 견뎌내는 일은 여전히 쉽지 않다. 준비해 간 철학 관련 책 한 권 다 읽고, 영화 한 편 보고 주리를 틀며 쇼팽공항에 도착하니 현지시간 오후 5시 30분이다. 공항의 전체적인 분위기는 한국의 지방공항 보다는 크지만 시설 수준은 못 미치는 정도가 아닐까. 공항에는 마르타 자매가 마중 나왔다. 언니 마르타는 바르샤바 대학을 졸업하고 성균관대학 대학원에서 딸과 동문수학했던 친구여서 재작년에 한국에서 식사하고 간단히 산책하며 안면을 텄던 친구라 많이 반가웠다. 마르타의 안내로 렌터카 수속을 마치고 9인승 벤츠 승합차를 타고 콘스탄친에 있는 동생 유스티나 집에 도착했다. 동생 유스티나 역시 바르샤바 대학 출신으로 고고학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전공과 다른 은행원으로 근무하고 있다. 딸 내외는 유스티나와 친분을 유지하며 이 집에 4번째 방문이다. 간단히 집 안내를 받고 저녁식사와 와인 한 잔으로 첫날의 피로를 녹이며 마무리했다.
[일시] 2025년 3월 13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