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전에 정했던 기일에 비가 내린다. 비가 내려도 친구를 만나는 일은 행복이다. 하여 경복궁역에서 우산을 받쳐 든 우리는 산행을 강행한다. 비가 내리는 날에 산행을 하기 위해 발을 내 딛기가 선뜻 내키지 않지만, 인생이 그렇듯 막상 첫 발을 딛고 나면 별거 아니다.
나이 들어가면서 친구를 만나는 일은 서로에게 선한 에너지를 물들이는 과정이다. 내리는 비를 맞으며 함께 걷다 보면 수묵화 물감 번지듯 친구의 마음이 내 가슴으로 스며든다. 우리들에게 울타리는 큰 의미가 없었던 거야. 막걸리 한 잔 권커니 잣 커니 기울이다 보면 세월도 겸연쩍게 비켜간다.
여름을 재촉하는 비가 거칠 줄 모르는데, 산을 오르는 사람들도 비를 피할 생각이 없다. 북악산 정상에서 만난 초로의 산객들도 비를 맞으며 마냥 행복해 보인다. 이 에너지는 도대체 어디서 만들어지는 걸까. 아마 친구를 만난 긍정의 기운에 비를 흠씬 맞아도 우정이 담긴 가슴에는 젖지 않는가 보다.
북악산 하산 길에 마주한 청년들 한 무리가 비를 맞으며 북악산 정상을 향하여 뛰다시피 오르고 있다. 최근 산에서 젊은 청년들을 자주 만나기는 했지만, 이렇게 비가 내리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산을 오르는 젊은이들에게서 우리나라의 밝은 미래를 예감한다. 요즘 젊은이들이 게임에 빠져 세상 밖으로 나올 줄도 모르고 나약하게 좀비처럼 살아갈 것이라 염려했던 선입견은 기우였다. 어설프게 어른 행세하며 권력의 단 맛에 혀가 마비된 구태한 세대들은 자리를 내놓는 게 순리다. 젊은이들이 맘껏 세상을 디자인할 수 있도록 깨끗하게 여백을 남기자. 정의로 포장한 정의롭지 못한 경험 같은 것은 그들에게 필요치 않다.
제법 비가 많이 내리는 청와대에도 많은 사람들로 북적인다. 비가 두렵지 않은 사람들의 뜨거운 열정은 무엇일까. 고개를 갸우뚱거려도 알 길이 없지만, 행복 바이러스가 넘치고 있음은 분명할 것이다. 우리들 역시 비를 맞으며 행복한 하루의 여정을 엮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식당에 들러 막걸리 잔에 다음 산행지를 그려 넣은 일도 행복이다. 하루가 채 끝나기도 전에 다음에 만날 이정표를 기다리며 헤어지는 발자국에도 웃음으로 가득 찬다.
[산행 일시] 2023년 5월 27일
[산행 경로] 경복궁역 - 경기상고 - 창의문 - 북악산 정상 - 청와대 - 경복궁역(8km)
[산행 시간] 3시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