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記 行

피맛골

반응형

피맛골

 

경복궁과 종로 사이..

대감들이 수시로 드나들던 그 길에

백성들은 대감들 행차에 고개를 자주 숙이느라 제 갈 길을 제대로 갈 수가 없었다.

이에 나랏님께서

백성들이 말을 피해서 뒷골목으로 다닐 수 있도록 길을 내 주었다.

말을 피해서 다녔던 그 길이 避馬골이다.

조선 초기에 사람들의 필요에 의해 자생적으로 생겨난 골목길이 지상에서 사라질 운명에 처했다.

 

역사와 운명을 함께했던 골목길이 마지막 숨을 가누고 있다.

재개발이라는 미명하에 역사가 묻힌다.

서울 도심의 한복판에서 끈질기게 생명을 이어오던 그 골목길..

배고픈 서민들이 한 가락의 노래와 끼니를 때우던 골목길.

대학생들이 민주를 걸러내며 막걸리를 마시고 때로는 삶의 철학을 빈대떡에 부쳐대던 그 골목길.

 

이제 생선을 굽는 비린내가 목에 핏발이 서도록 외쳐대도 골목이 다 차지 않는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떠났다.

그 옆에 현대식 건물에 피맛골을 옮겨놨다.

그곳에서 옛 향수를 들춰보라 하는데 영 내키지가 않는다.

 

 

개발이 뭘까.

사람이 살아가기 위해 인위적으로 만드는 공간이다.

그동안 몇 백년동안 불편함없이 잘 지켜온 골목이 거추장스러워졌을까.

새롭게 만드는 문화도 좋겠지만

그동안 지켜온 소중한 문화를 지키는 일은 더 중요한 일이다.

우리는 착각을 할 때가 종종 있다.

새롭고 현대적인 것 만이 우리들을 편하게 만든다고 생각한다.

과연 그럴까.

개발을 함으로서 몸은 편하게 될 수도 있다.

그렇지만 마음은 그 반대일수도 있다.

몸 편하자고 마음 뉘일 곳을 없애려한다.

참 바보같은 짓이지만 부끄러운줄 모른다.

 

 

사람들이 떠난 자리에

막걸리병이 흔적을 남긴다.

이제는 골목을 지키던 주인도 떠나고

골목을 찾던 객들도 더이상 찾을 곳이 없다.

 

켜켜이 역사와 향수를 담았던 골목길에서

우리는 멍하니 골목사이로 난 하늘을 올려다 본다.

주변의 빌딩들이 하늘을 덮는다.

그만큼 내 마음도 덮인다.

쓸쓸한 골목길에서 내 발걸음도 힘을 잃는다.

골목안에는 이제 몇 몇 집에서 마지막 역사를 태우고 있다.

저 집들도 곧 떠날 것이다.

우리들의 마음속에 향수만 남긴채 우리는 역사를 접어야 한다.

또 다른 역사에 마음을 기대야한다.

 

 

인간이었기에...

옛일을 아쉬워하지만

쉽게 옛날을 잊기도한다.

그리고 또 다시 새로운 역사에 적응한다.

아무일 없었던 듯

피맛골은 향기를 감추고 우리는 가슴에서 향수를 우려낸다.

다시는 보지 못할 피맛골이여..

다시 내 마음이 고달플때 세상을 피해 숨고 싶을때..

그때 다시 그 골목길을 열어줄수는 없을까.

 

* 일     시 : 2009년 4월 4일

 

728x90

'記 行' 카테고리의 다른 글

소재사  (0) 2009.04.26
비슬산 유가사  (0) 2009.04.26
청계천의 봄  (0) 2009.04.05
백련사  (0) 2009.01.20
고등어 잡이 - 양포항  (0) 2008.11.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