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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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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방산 산에도 그리움이 있다. 아무에게나 생기지 않는 그리움을 따라 매서운 한파가 몰아치는 한 겨울 계방산에 오른다. 메마른 감성 너머 향기마저 희미해져 가는 나 자신을 깨워보려는 아름다운 매듭이다. 이 길에서 사라져 버린 그리운 것들을 떠올린다. 애지중지 나만의 욕심이었는데, 내려놓고 나니 별 것 아님을 그때는 미처 몰랐다. 산너울의 빛들을 오롯이 드러낸 겨울산에 엷은 먹빛을 들어 한숨으로 그려본다. 뙤약볕이 내리쬐던 한 여름에 들이쉬었던 긴 숨을 이제야 뱉어낸다. 산호초를 만날 수 있을까 조마조마한 기대감이 있었는데, 온 산에 수정 같은 보물이 천지에 널렸다. 숨을 쉴 수가 없다. 감탄을 쏟아내는 틈으로 욕이 섞여 나온다. 속앓이 같은 감동을 표현해 내는데 한계를 느끼면서도 행복하다. 난데없이 까만 까마귀 .. 2023. 12. 24.
달리는 습관 아침 기온 영하 13도를 밑돌아 올해 들어 가장 추운 날씨로 기억되는 날. 한강변을 달리는 사람들은 분명 바람이 든 것이여. 그렇지 않고는 분간 없이 이렇게 무리할 리가 있나. 꽁꽁 싸매고 달려도 춥기는 춥다. 바람을 맞서며 달릴 때에는 바람을 등지고 싶은 유혹이 인다. 맹추위를 뚫고 바람에 맞선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다. 손발도 얼고, 입술도 언다. 탄천과 한강에는 가마우지 떼들이 천연덕스럽게 자맥질하며 여유를 부린다. 핫팩도 없이 버티는 걸 보면 대단한 녀석들이다. 어쩌면 그들 세상인지도 모르겠다. 더운 여름철에는 풀이 죽어 축 늘어진 모습이 안쓰러웠는데, 추운 날에는 눈이 초롱초롱하고 깃털에 윤이 난다. 겨울을 손꼽아 기다렸던 것이 분명할 거야. 우리도 오늘을 손꼽아 기다렸다. 그날에 동장군이 닥.. 2023. 12. 18.
무명 용사의 봄 가끔은 쫓기듯이 살아가는 하루가 내게 주는 의미를 새겨본다. 주어진 삶을 되새김질하면서 향기를 찾기도 한다. 거친 삶 속에서도 행복은 있다. 무명용사 그들은 쫓기듯이 살아가는 하루가 힘들고 귀찮아서 꿈을 접어버린 것은 아닐 것이다. 꿈이 어떤 색깔인지, 어떻게 생겼는지도 모르는 사람들이었다. 그들에게 꿈은 국립현충원에 말없이 서 있는 대리석 묘비였다. 왜 사라졌는지도 모른 체 봄을 기다린다. 그들을 일러 무명용사라 한다. [일 시] 2008년 4월 9일 [장 소] 국립 서울 현충원(서울시 동작구 동작동) 2023. 12. 15.
청와대 윤석열 신임 대통령의 청와대 입성을 두고 왈가왈부 말이 많았다. 신임 대통령은 청와대에 한 발 짝도 들이지 않겠다는 각오로 버텼다. 이를 두고 풍수지리를 맹목적으로 따르는 모리배쯤으로 비아냥거리며 야당에서는 협조를 하지 않았다. 당시에 대통령실로 지정한 국방부 건물의 리모델링 비용을 승인을 해주지 않아 입주가 늦어지기도 했다. 신임 대통령이 청와대를 들어가지 않겠다는 의지에 대한 명분을 뚜렷이 밝힌 바는 없다. 굳이 마다할 이유가 딱히 없는데, 끝까지 버텼던 것은 청와대 건물의 허술한 보안에 대한 정보를 입수하지 않았나 추측된다. 실제로 김영삼 대통령 시절에 청와대에 근무한 공조 기사가 간첩이었는데, 근무를 마친 뒤 북한으로 입북했다는 사실을 탈북한 고위급 인사가 밝힌 적이 있다. 그것이 사실이라면 청와.. 2023. 12. 13.
삼각산 의상능선 겨울산은 솔직해서 좋다. 여름에 나뭇잎에 가려 보이지 않았던 골짜기의 생김생김을 가감 없이 보여준다. 그는 자신을 보여주기 위해 모두 다 내려놓았다. 의상능선 길에 올라서면 좌측으로는 원효봉이 의상봉과 키재기 하듯 봉긋 솟아 있고, 그 뒤로는 숨은 벽 능선을 따라 백운대가 위엄 있게 서 있다. 사진에 나오지 않을까 봐 까치발을 딛고 백운대와 만경대 사이 고개를 갸웃 내밀고 있는 인수봉은 귀엽기까지 하다. 백운대, 인수봉과 나란히 만경대가 삼각의 꼭짓점을 맞추고 있어서 우정이 돋보인다. 그 아래로 노적봉이 노적가리를 쌓아 놓은 듯 버티고 있어서 든든하다. 고개를 들어 더 멀리 시선을 던지면 도봉산 오봉 능선이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으려는 듯 그리움을 닮아 있다. 우측으로는 응봉능선이 올망졸망 하늘과 경계를 .. 2023. 12. 4.
최선과 예술 최선은 예술이다 우리는 흔히 자신의 일에 최선을 다하라는 얘기를 종종 듣는다. 그러나 최선을 다하기란 정말 쉽지 않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최선이라는 기준을 설정하지 못한 채 적당하게 타협하고 자신을 위로한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하여 최선을 다 한다면 두려울 게 없다. 어떤 때에는 최선을 다하고도 만족하지 못하는 경우가 있는가 하면, 경우에 따라서는 적당하게 하고도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하면서 자기 최면을 걸고 위로한다. 무엇을 어떻게 해야 최선을 다하는 걸까. 궁극적으로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무엇을 얻으려 하는가. 이 물음에 대한 답을 찾지 않고는 우리는 영원히 최선을 다할 수가 없을뿐더러 최선을 다하기도 어렵다. 최선을 다한다는 명제는 개인차가 너무 많으므로 삶의 전부를 두고 분석하기에는 시간적 .. 2023. 11. 28.
삼각산 성큼 다가 선 겨울이 낯설지는 않지만, 떠나보내야 하는 가을은 아쉬움을 남기는 시간. 미처 준비가 모자랐던 단풍잎이 지난밤 된서리에 고운 단풍을 갈무리할 겨를도 없이 고스라졌다. 개울가에 오종종 어깨를 견주고 있던 파란 이끼가 투명하게 맺힌 얼음에 낯선 이마를 맞대고 있다. 가고 오는 세월을 따라 무뚝뚝한 나의 계절도 뒤뚱거리며 쫓는다. 겨울이 온다는 것은 봄이 오고야 말 것이라는 무언의 암시. 더디게 올 것을 알기에 보채지는 말자. [산행 일시] 2023년 11월 16일 [산행 경로] 북한산성 입구 - 대서문 - 중성문 - 대남문 - 구기탐방지원센터(9.5km) [산행 시간] 3시간 40분 2023. 11. 26.
[時論] 암컷들의 거취 최근 한 수컷 정치인이 대통령 부인을 빗대어 암컷이 설친다는 표현을 공개적으로 발설하여 논쟁거리가 되었다. 그에게 암컷은 무슨 의미일까. 자신의 배우자 또는 딸도 그 범주에 들어간다는 의미일까. 이 정도 되면 그에게 수컷이니 암컷이니 이런 말로 되갚아 주는 것은 창피할 정도다. 21세기 대명천지 대한민국 정치인의 사고 수준이 이 정도라니 한심할 따름이다. 그와 정치적인 궤를 같이 하는 송ㅇㅇ은 오십 넘은 각료에게 어린놈이라고 일갈하며 조롱하고 있다. 예전에 유ㅇㅇ은 인간이 육십이 넘으면 뇌가 썩기 때문에 정상적인 사고를 하기 힘들므로 정치에 관심을 멀리하라는 식으로 이야기해서 사회적인 비판을 받은 적이 있다. 최근에는 젊은이들에게 정치와 경제에 관심 없이 자신들 배만 불리면 된다는 플래카드를 내 걸어 소.. 2023. 11. 23.
친구 친구 간에 삼가야 할 몇 가지는 자식 자랑, 배우자 자랑, 돈 자랑을 꼽을 수 있겠다. 특히 여성 친구들 간에 자식 자랑은 절대 금기 사항이다. 모성에 있어서 자식은 영혼의 탯줄이 이어져 있는 관계여서 더욱 각별하다. 영혼을 나눈 자식이 다른 자식과 비교되어 열등함을 인정해야 된다면 폐부 깊숙이 재워 둔 아픔을 꺼집어내는 것과 같다. 진짜 친한 친구는 결코 눈치를 보지 않아도 되는 친구다. 자식 자랑을 늘어놓아도, 배우자 자랑을 늘어놓아도, 돈 자랑을 늘어놓아도 거리낌 없는 관계다. 드러내지 않고 숨겨진 아픔을 위로받을 수 있는 친구가 진정한 친구다. 2023. 11. 18.
월출산 월출산에 해 뜨거든 날 불러주오 월출산에 달 뜨거든 날 불러주오 노랫말을 흥얼거리며 월출산에 안기니 무지 반갑다. 그동안 잊다시피 지냈었는데, 사명社命을 받들기 위해 임지任地에 근무 중인 친구의 호의로 반가운 인사를 나누게 되었다. 대학 동창들이어서 꽤 오래된 우정이지만, 자주 만나지 못하고 대면대면 연락만 유지하고 지내다가 근자에 와서 산이라는 매개체를 통하여 안부가 가까워졌다. 언제나 그랬지만 월출산은 호락호락하지가 않다. 남도 지방에 자리 잡았지만, 그 높이가 809미터나 되어 결코 만만한 산은 아니다. 더구나 영산강이 느긋하게 휘감아 도는 너른 들판에 암릉들이 다투듯 우뚝 솟아 있어서 산 길을 걸을 때에도 한 눈 팔 새가 없다. 그러거나 말거나 오랜만에 만난 친구들과 수다를 안주 삼아 걷는 길은,.. 2023. 11. 13.
운주사 [안부] 어디 편찮으신가 운주사 와불님 혼자 걸어도 함께인 듯 함께 걸어도 혼자인 듯 가을바람이 서걱대는 계단길에서 가만히 염불소리를 모은다 님을 다시 만날 때까지 님의 아픔이 아니라 나의 아픔인 줄 미처 몰랐다오 어리숙한 석공의 손길에 희미해진 천불의 미소 님을 닮고 싶어 계면쩍게 웃어 본다 내 사랑의 안부를 조용히 걸어두고 돌아 서는 길 설익은 풍경소리가 애닮다 [일 시] 2023년 11월 12일 2023. 11. 12.
어느 이방인 아내의 고백 이 국 만 리에 정을 묻고 사랑을 심고 싶었다. 사랑하는 부모, 형제들의 가시 같은 슬픔을 뒤로하고 그녀는 고국을 떠나왔다. 어차피 가족과 자신의 미래를 위한 선택이었지만, 사랑보다는 미지의 세계에 대한 동경과 절박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한 돈이 필요했던 것이다. 굳이 많은 돈이 필요했던 건 아니겠지만, 가족들의 궁핍을 면할 수 있는 정도의 돈과 동생들이 공부할 수 있는 어느 정도의 돈이면 되었다. 아직은 철부지라면 철부지다. 부모 사랑이 더 많이 필요한 나이인데, 새로운 삶을 찾아 보모 곁을 떠나왔다. 이 모든 아픔을 다 치료하고도 남을 만큼 꿈은 야무지게 커져, 더 이상 품을 비집고 들어올 불행은 없다. 십 대 일의 경쟁을 자랑스럽게 통과했다. 사랑할 대상이 어떤 사람이건 상관없다. 친구들 간의 경쟁으.. 2023. 11.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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