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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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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백산 겨울을 떠나보내기 전에 소백산 바람을 맞아야 직성이 풀리는 고약한 버릇이 생겼다. 여차저차 기회를 놓치게 되면 마음이 개운치 않아 한 해 보내기가 찜찜하다. 하여 칼바람을 맞으리라 단단히 각오를 하며 소백산을 오른다. 솔직히 소백산은 기기묘묘한 바위나 수려한 풍광이 마음을 끄는 산은 아니다. 험준하지 않고 그저 평범한 산이다. 그나마 철쭉이 피는 계절에는 철쭉꽃이 군락을 이루어 가끔 안부가 그리운 산이다. 겨울에 소백산을 오르는 이유는 면역 예방주사 같은 세찬 바람을 맞기 위함이다. 예전에 지인은 겨울 산행 경험이 많지 않았을 때, 아내와 함께 겨울 소백산에 올랐다가 바람을 제대로 만나 혼쭐이 난 적 있다. 장갑도 부실했고, 볼싸개 등을 준비하지 않은 상태에서 여느 겨울 산 오르듯 올랐다가 감당할 수 없.. 2024. 2. 5.
연습이 필요하다 흔히 마라톤을 인생에 비유한다. 삶이든 마라톤이든 쉽지 않음을 방증하는 말이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꼭 맞는 말도 아니다. 다른 점이 있다면, 인생은 연습을 할 수가 없을뿐더러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마라톤은 연습을 하지 않고는 그 문턱에 발을 들여놓을 수가 없다. 며칠간 기승을 부리던 맹추위가 다소 느긋해진 틈을 골라 오랜만에 양재천을 달린다. 새해 들어 처음 맞춰 보는 걸음이라 어딘가 모르게 어색해진 느낌이다. 나이를 쌓아 갈수록 걸음이 무뎌지는 느낌은 피할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이다. 힘든 달리기가 부담은 되지만 아직 피하고 싶은 생각이 없다. 탄천에 무리를 이루고 있던 물닭들이 몇 마리밖에 보이지 않는다. 환경이 맞지 않아 자리를 뜬 것인지. 아니면 추위를 피해 잠시 피난을 간 것일까. .. 2024. 1. 29.
쓰임과 용도 장인이 평생을 공들여 억센 수염도 단 번에 흔적 없이 자를 수 있는 세상에서 가장 잘 드는 면도칼을 만들었다. 어깨를 으쓱거리며 면도를 하다가 면도날을 세로로 그어보았다. 단 한 개의 수염도 잘리지 않는다. 평생 동안 들인 공이 말짱도루묵인가. 그렇지만 노력이 헛된 것은 아니다. 하찮은 미물도 그 쓰임이 있으며 쓰는 방법에 따라 그 결과도 달라질 뿐이다. 면도칼로 나무를 자르려 했다면 헛된 노력이 된다. 나무를 자를 때는 도끼를 만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평생 공을 들인 결과가 그 용도와 쓰임이 옳지 못하면 헛된 노력이 된다. 2024. 1. 24.
德덕 하늘의 뜻을 인간에게 전할 수 있는 수단이 '德'이라 했다. 德은 인간 세상에 순하게 적응할 수 있는 기초적인 에너지이며, 중생을 제도할 수 있는 리더십의 근본이다. 세상 살아보니 쉽지 않다. 중생 제도는 고사하고 세상에 적응하기도 만만치 않다. 修身齊家수신제가라 했거늘 부침이 많다. 몸과 마음을 수양하고 가정을 가지런히 관리하여 울퉁불퉁함이 없게 해야 하거늘 모자람이 많다. 德이 부족한 탓이다. 2024. 1. 20.
할배 신분증 며느리에게 감사함을 전한다. 아이가 귀한 요즘 세상에 앞뒤 재지 않고 자연의 순리를 따라 생명을 잉태하고 건강하게 자식을 순산한 것은 가문의 영광이다. 세상에 이 보다 더 귀한 일이 어디 있으랴. 우리 가족에게는 벅차오르는 감동을 주체하지 못할 만큼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이벤트다. 아울러 국가에서도 귀한 자산을 얻었으니 든든하고 복 된 일이다. 최근 우리나라 젊은이들은 출산을 기피하는 사조가 팽배해 있다. 사회 환경 등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자연의 질서를 경시하는 풍조는 극단적인 이기심에서 비롯되는 현상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즉, 자연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가 너무 자만적이고 겸손하지 못하다. 혼자만의 능력으로 충분히 행복을 꾸릴 수 있다고 자신하고, 자신 이외의 것들에 대해서는 거추장스럽게 생각하.. 2024. 1. 17.
도봉산 여성봉 산은 왜 오르는가? 매번 자문하기도 하지만, 산을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서 종종 받는 질문이다. 한 마디로 잘라 답변하지 못하는 이유는 삶이기 때문이다. 삶에 정도正道가 없는 것처럼 산에 가는 이유도 특별히 내세울만한 명제는 없다. 오늘은 어딘가 비어 있는 허기를 채우기 위함이라 단정하고 도봉산 오봉탐방센터의 산문山門을 연다. 음달에 쌓인 눈 길이 다소 미끄럽기는 해도 그런대로 걸을만하다. 능선에 오르니 사방천지 시야가 탁 트인다. 모처럼 맞는 햇볕도 신선하게 다가온다. 다 같은 햇볕이어도 산에서 맞는 햇볕은 도심에서 맞는 햇볕과는 그 느낌이 사뭇 다르다. 도심에서 맞는 햇볕이 인공적인 느낌이라면 산에서 맞는 햇볕은 자연이 내어주는 선물이다. 여성봉을 친견하고 갑진년 한 해를 균형 있게 채워 갈 음기를 .. 2024. 1. 14.
諸行無常 제행무상 [J에게] 친구! 당신 마음속에 울고 있는 자신을 본 적이 있는가. 자네는 그런 적이 없을 것이라고 감히 단정한다. 거울 속에서 울고 있는 자신의 모습이 자신의 전부라 생각하고, 자신에 대한 가치를 업신여겼다고 가정한다. 진정한 당신의 가치는 당신 내면에 잠재된 에너지임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평정심을 가지고 잘 지내는지, 울고 있는지, 웃고 있는지를 살필 줄 알아야 진솔한 자신을 볼 수 있지 않을까. 자네는 심한 우울감에 행복의 매듭도 슬픔이라고 단정해 버린다. 결국, 삶은 우울한 것이어서 태우면 재만 남는다고 생각한다. 삶을 영위해야 할 가치를 폄훼하고 집착할 이유를 찾지 못할뿐더러 구차하게 찾을 생각도 않는다. 우울감이라는 게 일부러 만든 것은 아니지만, 자네에게 찾아온 손님인 것은 분명하다. 손님 .. 2024. 1. 10.
덕유산 겨울산을 오를 때마다 산호초 같은 상고대를 만나리라는 기대감이 있다. 언제나 멋진 상고대를 보여주던 덕유산이었는데, 올해는 찰떡같이 일정을 맞추지 못했다. 아쉽기는 하지만 눈에 가려 보지 못했던 산맥의 진면목을 볼 수 있으니 또 다른 행운이다. 동엽령에 올랐는데 바람이 예전 같지가 않다. 순한 바람에 햇볕이 쬐는 풍경이 어색하기만 하다.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비닐 쉘터를 준비했었는데 펼쳐보지도 못했다. 컵라면과 간단한 요기를 하고 서둘러 자리를 떠났다. 동엽령에서 향적봉 오르는 길이 길게 느껴진 적이 없었는데 유달리 지루하게 느껴진다. 상고대가 터널을 이루고 있을 때에는 사진 찍느라 지루한 줄 모르고, 바람이 세차고 추울 때에는 앞만 보고 고통을 벗어나려 지루함을 느낄 새가 없었던 까닭이리라. 속을 다 .. 2024. 1. 7.
태백산 죽어 천년이라던 주목 고사목들도 몇 년 사이 세월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흔적을 지운다. 지난여름 태풍을 견뎌냈을 나무들도 소리 없이 내린 눈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 속절없이 꺾여 삶의 궤적을 멈췄다. 자연은 그러한 것이었으니 삶과 죽음의 경계는 그리 두려울 게 없다. 경계를 구분 짓는 것 또한 의미 없는 일이지만, 나무에 매달린 고드름은 또 다른 의미를 던진다. 살아 있는 나뭇가지를 감싸고 있는 고드름은 바람이 불 때마다 흔들리며 악기가 되어 맑고 고운 소리를 낸다. 반면에 죽은 나뭇가지를 감싸고 있는 고드름은 얼음 조각 같아서 바람이 불어도 반응이 없다. 나무의 본질은 변한 게 없지만 그들의 경계에는 물이 있었다. 나무속을 흐르는 물은 생명의 원천이다. 태백산과 나. 지표면과 발바닥의 경계에는 무슨 .. 2024. 1. 3.
甲辰年 새해 福 많이 지으세요. 새해 용꿈을 꾸느라 잠을 설쳤다. 세월의 속도는 나이에 비례한다는 가설이 진리가 되어 버린 어느 날부터 새 날을 맞는 게 두려워졌다. 그러나 새해를 맞는 설렘은 언제나 기다려진다. 기어이 오고야 말 오늘이지만, 새해를 맞는 첫날에는 투덜대지 않고 용의 꼬리를 잡고 유영을 한다. 이른 새벽을 깨워 인왕산 일출을 맞으러 친구들과 함께 손을 잡았다. 새해맞이 젊은 진객들이 인산인해를 이뤄 들머리 진입이 쉽지 않다. 젊은 친구들은 왜 새벽잠을 마다하며 일출맞이 줄에 서 있을까. 삶이 녹록하지 않다는 반증일까. 아니면, 새해 건강한 일상을 다짐하기 위한 이벤트가 필요했을까. 다행인 것은 줄을 서서 기다리는 마음에 짜증이 섞이지 않았다. 모두들 기대감에 가득 찬 미소를 품고 있어 여유가 느껴진다. 주로 계단으로 이.. 2024. 1. 2.
아름다운 꿈 가물한 우주에 별 하나. 성실하고 책임감 강한 그는 예쁘고 상냥한 또 다른 별을 만나 아름다운 별을 잉태하였으니 천지간에 이 보다 더 기쁜 일이 있으랴. 내가 할아버지가 된다는 사실이 아직은 실감이 나지 않고 신기하기만 하다. 그 보다 더 신기한 것은 사랑하는 아들이 아버지가 되고, 새 아기가 세상에서 가장 숭고한 어머니가 된다는 사실이다. 새해가 기지개를 켜고 열리는 문틈으로 건강한 에너지를 품은 태양이 떠오르면, 아름다운 꿈을 간직한 예쁜 별 하나 생긴다는 사실이 이토록 좋을까. 생각할수록 흐뭇해지는 상상하지 못할 기쁨이다. 위대한 우주의 질서가 흐트러짐 없이 만들어 내는 인연에 감탄할 뿐이다. 새 아가! 새 생명을 잉태하고 만삭이 될 때까지 건강한 마음으로 키워 온 계묘년은 참 고마운 한 해다. 이.. 2023. 12. 29.
삼각산 인생을 살면서 실천하기 어려운 일 중 하나는 '남이 보지 않을 때 자신을 속이지 않는 것'이라 했다. 나는 그러하지 못했음을 솔직히 고백한다. 대체로 남을 속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아주 가끔은 남을 속이기도 했으며 자신에게 떳떳하지 못했던 때도 있었다. 눈 내린 삼각산을 오르면서 숨 가쁘게 살아온 한 해를 되짚어 본다. 언제나 아쉬움이 많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나이를 먹을수록 자신에게 더 솔직할 수 있는 여유가 많아진다는 점이다. 그런 연유로 변명을 덜해도 세상을 훌륭하게 살아갈 수 있음을 깨달았으니 다행이다. 육십 대에 접어드니 나이 한 살 더 먹는 게 두렵기보다는 품이 넉넉해진다. 일찍이 경험해 보지 못한 익숙함을 느껴본다. 인간의 본성이 그러했나 보다. 이제 유년기의 본성을 찾아가는 듯하다. 많..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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