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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름다운 동행
수필집[파고만댕이의 여름]

닭 한마리의 진실

by 桃溪도계 2006. 7.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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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닭 한마리의 진실


   키가 작달막하고 항상 얼굴에 풍성한 미소를 띤 주인아저씨는, 식당 앞을 지나치며 만날 때마다 진솔하고 정감이 뚝뚝 묻어나는 인사를 거르는 법이 없다.

 

   그가 운영하는 식당이름은 ‘원조 닭한마리’다. 식당의 주요메뉴도 ‘닭한마리’ 와 삼계탕’ 이다. 메뉴의 주요 재료가 닭이지만 계절을 가리지 않고 손님들로 북적댄다. 최근에는 공중파 방송의 음식 프로그램에 소개되기도 해서 칭찬이 자자하다.

 

   ‘닭한마리’ 메뉴는 별다른 게 없다. 닭을 먹기 좋을 만큼 자르고, 두껍게 편썰기 한 감자와 함께 냄비에 넣어 육수를 붓고 끓인다. 다 끓으면 닭고기를 소스에 살짝 찍어 먹는다. 남은 육수에 칼국수를 넣어 건져먹고, 다시 밥을 넣어 쭉 끓이듯이 쑤어서 뽀글뽀글 끓으면 냄비 바닥까지 달달 긁어 먹으면 된다.

 

  특이한점은, 식당 벽과 창에는 온통 닭한마리의 진실을 밝히는 문구로 도배를 했다. 식당골목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원조 시조 따지지 말고 맛으로 대결하자’ 라는 자신감에 넘치는 광고문구와는 좀 다르다.

 

  처음에 맞은편 건물지하에서 ‘닭한마리’ 식당을 열어 열심히 일하던 중, 건물주인이 식당이 잘 되는 것을 시기하여 권리금을 주지 않고 쫓아내려고 점포명도가처분신청을 법원에 내서 항변할 기회도 주지 않고 일방적으로 내쳤다. 이에 부랴부랴 억울함을 가슴에 묻고 맞은편 건물을 얻어서 다시 식당을 열고 영업을 하게 되었다는 내용이다.

 

   ‘원조 닭한마리’ 요리는 식당주인의 할머니께서 개발한 가족 영양식이었는데, 가업을 이어받아 많은 사람들께 선보일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을 늘어놓는다. 

 

  한편 ‘원조 닭한마리’ 식당을 쫓아낸 건물주인은 친척을 시켜서 그 자리에 ‘본가 닭한마리’ 라는 간판으로 식당을 열고 영업 중이다. 뒤통수를 얻어맞은 원조는 억울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해서 처음에는 많이 흐느적거렸다. ‘남의 뒤통수를 치고도 얼마만큼 잘 살 수 있나.’ 혀를 깨무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건져온 시간이다.

 

  진실만이 그의 편에 있을 뿐 현실의 벽은 높다. 억울함을 호소할 길이 없어 식당내외에 ‘원조 닭한마리’의 진실을 알리는 홍보문구를 걸고, 진실과 겸손으로 고객들께 정성을 다했다. 본가식당 옆 나대지를 임차해서 원조식당 주차장으로 꾸미고 서비스의 품질을 높여갔다.

 

  어떤 골목에 아구찜을 메뉴로 하는 식당을 열어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아구찜’ 이라는 간판을 걸었다. 얼마 후에 맞은편에 ‘대한민국에서 제일 맛있는 아구찜’ 이라는 간판을 걸고 영업을 시작했다. 또 얼마 후에 ‘이 골목에서 가장 맛있는 아구찜’ 이라는 간판으로 식당을 열었다. 누가 제일 맛있을까. 모두 다 맛있을까. 간판만 맛있을까.

 

  같은 골목에서 같은 메뉴를 걸고 원조와 본가가 한바탕 씨름을 벌인다. 누가 이길까. 일반적으로는 자본이 많거나, 맛이 좋거나, 서비스가 좋은 식당이 이긴다. 하지만, ‘닭한마리’의 싸움에서는 경우가 다르다. 이 게임에서는 진실한 간판을 내건 원조가 이길 수밖에 없다.

 

  원조든 본가든 상대를 이기려고 식당을 운영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원조 입장에서는 비정상적이고 윤리적 개념이 상실되어 기형적인 과정에 의해 탄생된 본가가 그리 곱게 보일 리 없다. 그러한 원조의 억울함을 고객들은 분명하고 똑똑하게 기억한다.

 

  실제로 원조와 본가의 ‘닭한마리’ 요리에 대한 맛의 차이를 구별하기 어렵다. 서비스 품질도 대등소이하다. 그런데 원조식당에는 발 들여놓을 틈이 없어도 본가식당은 썰렁하다. 원조식당은 나날이 발전하여 2층 건물 전체를 식당으로 사용하고 있다. 복날에는 예약도 어렵다.

 

  그의 성공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신선한 진실을 재료로 요리를 한다. 진실은 고객의 마음을 움직이는 힘이 있다. 잔꾀나 술수로 고객을 이길 수는 없다. 고객은 진실에서 우러나오는 담백하고 시원한 ‘닭한마리’의 맛을 기억에서 지우려 하지 않는다.

 

  음식의 맛은 혀로 느끼지만, 그 기억은 가슴에 담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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