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들이
친구는 해군 대령 예편하고, 그의 아내는 선생님 정년 마치고 부부가 알콩달콩 계룡시 외곽에 보금자리를 마련했다. 산자락에 위치한 전원주택은 부부가 머리를 맞대고 향기 솔솔 나는 집을 지었다. 부지 마련하고, 설계하고, 민원 해결하고, 집 짓는 일이 그리 쉽기야 하겠냐만은 친구는 나름 자신들만의 개성을 마음껏 연출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하고 친구들을 초청했다. 솔직히 친구를 만나는 일도 즐거운 일이지만, 친구가 고민하고 열정을 다해 지은 집을 보고 싶은 마음은 설렘이다.
친구들을 초청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기다렸을 친구는, 쇠죽 향기가 물씬 느껴지는 털털함으로 기분 좋게 맞는다. 미처 안부를 여쭐 겨를도 없이 손을 덥석 잡고 오랜만에 만난 회포를 푼다. 집 소개도 없이 막걸리부터 내놓는다. 묵직하게 한 잔 쭈욱 단숨에 들이켜니 실크로드를 따라 고비사막을 걷던 낙타가 겪었을 갈증이 쑤욱 내려간다.
이어서 필살기라며 호기롭게 준비한 항아리 바비큐를 내놓는다. 기름기가 쭉 빠져 담백한 풍미가 생전 처음 먹어보는 맛이다. 자랑할 만한 맛이어서 흉내 내기 위해 유심히 살폈다. 취기를 빌어 아무 말이나 내놓아도 흉이 되지 않는 게 친구다. 과하면 조금의 실수를 할 수도 있겠지만,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리라 믿고 별이 숨어버린 하늘을 아쉬워한다. 마음껏 부어라 마시다 보면 별똥별 하나 떨어지겠지. 밤이 깊어 새벽이 될 때까지 별똥별은 떨어지지 않았다.
여명이 열리는 시간에 약속이나 한 듯이 친구들 모두 잠에서 깼다. 텃밭으로 간다. 고구마, 옥수수, 참외, 대파, 양배추, 호박, 상추, 쑥갓, 들깨, 땅콩 등 없는 게 없다. 다소 넓어 보이는 텃밭을 관리하려면 제법 신경 써야겠다. 상추 뜯으며 시골의 정서를 마음껏 담으니 가슴에 옭매어져 있던 도시에서의 숨 막혔던 삶의 상처들이 옅어진다. 이대로 한 일주일쯤만 있으면 한숨 돌릴 수 있을 것 같다.
양주, 막걸리, 맥주, 소주 가리지 않고 술을 무리하게 마셨더니 숙취가 많다. 황태 해장국으로 해장하면서 해장술이라는 핑계 잔에 또 소주를 따랐다. 술이라는 게 마시고 싶은 만큼 마셔지는 게 아니다. 별생각 없다가도 분위기 좋고 기분 좋으면 웬만큼 마셔도 취하지 않는다.
헤어져야 할 시간, 우리는 또 다른 만남을 기약한다. 잡신들 물러가라고 집을 번쩍 들었다 놓았으니 행운만 가득하기를 바란다. 다음에 만날 때는 기념식수로 가져왔던 나무가 훌쩍 자라 이 멋진 집에 아름다운 그늘이 되었으면 좋겠다. 하룻밤을 약속했던 우리들의 시간은 그 운명을 다했다. 삶의 시간은 꽤나 빨리 흘러간다. 가끔 멈춰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으면 놓쳐버릴 수도 있다. 삶의 매듭마다 이렇게 쉼표를 찍어서 궤적을 살필 수 있는 여유를 가질 수 있기를 바란다. 신록이 품은 마음을 창 너머에 툭 던지니 푸른 향기를 내어 놓는다. 아름다운 계절에 모두들 행복하자.
[일 시] 2025년 6월 22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