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 行

국립 대전현충원

桃溪도계 2025. 6. 24. 0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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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은 죽음을 두려워하여 영원히 살고자 하나, 영원히 살 수 없다는 명제를 분명히 인식하고 저마다의 방식대로 살아간다. 어차피 죽을 것이라면 어떻게 죽을 것인가는 선택의 영역일 수도 있지만, 그 선택 역시 소꿉놀이 하듯 호락호락하지는 않다. 죽음이 두렵지만, 그 두려움을 이겨낸 용기 있는 순국선열들의 영령이 잠들어 있는 대전 현충원. 당초 수통골 트레킹에 나섰다가, 많은 비 때문에 입산 통제로 현충원으로 발길을 돌렸다. 복장이 가벼워 좀 송구스럽긴 하지만, 경건한 마음으로 경내를 둘러본다. 

 

태어난다는 것은 이미 늙고 병들고 죽는다는 진리의 길 위에 서는 것이다. 그러고 보면 삶과 죽음은 같은 말이다. 그런데 범인들은 영원히 살 것처럼 삶에 집착하기 마련이다. 인간이 생존할 수 있는 100년의 시간은 그리 길지도 않지만, 짧지도 않다. 살아서 무엇을 할 것인가에 대한 답을 명쾌하게 내놓지 못한다는 것은 삶에 집착할 이유도 분명하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무탈하게 오래 살기만을 원한다. 

 

현충원에는 국가와 민족을 위하여 자신의 삶을 재단하고 실행에 옮긴 용기 있는 선열들이 잠들어 있다. 왜 그들이라고 삶에 집착이 없었겠는가. 그렇지만,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고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초연하게 용기를 내었다. 세상은 재능 있는 사람이 아니라 용기 있는 사람에 의해 지혜가 생기고 변화가 일어난다는 점을 상기해 보면, 저절로 숙연해진다. 

 

굳이 분류하자면 나는 삶에 천착하는 부류여서 용기가 모자람을 부끄러워한다. 태어났으니 기생하듯 하루하루 속물처럼 살아간다. 술 한 잔에 희희낙락하고, 실룩거리는 여자 엉덩이 보면 침 흘리고, 알량한 돈 앞에 한없이 나약해지는 못난이다. 그래도 내게 주어진 삶을 어쩌겠는가. 용기 있는 선열들처럼 살지는 못할지라도 생을 다하는 날까지 봉사하는 마음으로 부끄럽지 않게 살아가기를 다짐한다. 

 

[일    시] 2025년 6월 21일

최규하 대통령 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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