桃溪도계 2016. 7. 3. 21: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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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봉정암 가는 길


지날 때마다 나와는 상관없는 남의 집 문간을 들락거리는듯 내외 했었는데...

형제들과 마음을 모아 봉황의 둥지에 마음을 담아보려 다잡고 오르는 길.

계곡마다 물이 넘치고 모처럼 신이 난 폭포가 힘차게 쏟아내는 의기양양함에서 인간의 미혹함이 새삼 부끄럽기만 하다.

거친 물살을 헤치며 강을 거슬러 오르는 연어들처럼 계곡을 따라 오르는 길에는 번뇌가 많다.


길지 않은, 그렇다고 짧지도 않은 삶

왜 우리는 가볍게 살지 못하고 욕망의 가시에 얽혀 아프게만 살아가는지 모를 일이다.

내 생각과는 다르다는 이유로 적을 만들고 그 적을 향해 가감없이 할퀸다.

굳이 적에게 상처를 주기 위함이라기 보다는 내 자존의 상처가 두려워서 손톱을 세운다.

그러다보면 자신의 손상이 더 커진다.

어리석음이다.


얼마나 더 상처를 입어야 앞 뒤 분간 못하는 어리석음의 울타리를 벗어 날 수 있을까

차라리 어리석게 살아가는 것이 삶의 본 모습은 아닐까.

억지로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겠다고 몸부림 치는 일도 인간이 극복 할 수 없는 욕망은 아닐까.


매 번 산에 오를 때마다 나는 내 자존의 깊이에 대해 가늠해 보곤 한다.

그런데 봉정암 오르는 길 옆으로 난 계곡에는 수량이 풍부해 물은 많지만 그 깊이가 얕게 느껴진다.

벌써 내 마음이 가벼워지고 있는 것일까.

봉점암에 오른다고 특별하게 마음을 지어 본 적은 없다.

그냥 마음 모이는대로 오를 뿐이다.

어쩐 일일까.


설악산 심부에 앉은 암자에는 소원을 이루고 싶은 사람들로 붐빈다.

각양각색의 소원들이 구름을 타고 하늘을 오르며 넘실넘실 능선을 넘는다.

산 넘어 비를 만나면 한 방울의 물이 되어버릴 부질없는 기도일지라도 끊임없이 부처를 향해 자신의 욕망을 채근한다.

정갈한 구도의 길을 따라 마음이 흩어지지 않게 조신하게 매무새를 고치고 무릎을 꿇는다.


하지만 인간은 참 편리하게도 상황에 따라 망각과 욕망의 처신이 난망해진다.

그렇게도 마음 다짐을 하고서도 작은 사욕 앞에서는 인간 본연의 모습들을 한 치 모자람 없이 내 놓는다.

땀을 씻어내는 한 족박의 물, 허기를 달래기 위한 한 끼의 밥, 배설을 위해 당부의 말을 덕지덕지 붙여 놓은 화장실, 쪽 잠을 자기위해 몸을 뉘기도 힘든 두 뼘 남짓한 폭의 잠자리에는 여지없이 인간군상의 다툼이 투덜거린다.

그러면서도 염세적인 기도를 한다.


봉황이 태산 준령을 넘어 바람이 잦아드는 양지녘에 잠시 쉬어 가는 둥지에서 멀건 미역국에 밥 한 주걱 말고 오이무침 두 세개를 얹어 식사를 해결한다. 

인간의 기본적인 욕구를 해결하는데는 이 만큼이면 충분하겠다.

세상에는 온갖 산해진미가 있겠지만 봉황이 오줌 지리고 간 소박한 미역국 한 그릇에 미칠 수 있으랴.


겨우 쪼그려 앉을 수 있는 면적이 내게 허락된 공간이다.

스님은 잠을 자는 공간이 아니라 기도하면서 잠시 쉬는 공간이라며 과욕 부리지 말 것을 주문한다.

이 험한 산골에서 작은 공간이지만 따뜻하게 등을 댈 수 있어서 행복이다.

더 이상의 음식과 공간은 사치다.

몸을 옆으로 뉘어 쪽잠을 청하며 코를 곤다.

이곳도 사람이 사는 곳이라는 걸 실감하게 된다.

밤새 들락거리는 사람들이 많아서 사실상 잠을 자기는 쉽지 않지만 머리가 바닥에 닿으면 잠을 잘 수 있다는 사실이 신기하기만 하다.

수용소 같은 풍경에서 모두를 불편하다고 투덜거리지만 그래도 쏟아지는 잠을 주체하지 못해 잠깐씩 눈을 붙인다.


몸을 뒤척이다가 불편해서 밖으로 잠시 나오니 별이 서너개 가물거린다.

우기인지라 하늘이 흐린 탓이다.

나는 왜 지금 여기에 있는가.

소박한 음식과 쪽지 만한 잠자리가 불편하지만은 않다.

기름지고 풍족한 곳에는 세상 잡 파리떼들이 덤벼들어 번뇌가 많겠지만 가장 소박하고 겸손한 공간에서는 욕심 낼 필요가 없다.

그래서 번뇌를 지울 수 있는 참 행복한 곳이다.

단 하나,

내일 험한 길을 내려가기 위해 잠을 청해야겠다는 번뇌 하나만 만지작거리며 새벽을 기다린다.






































* 일      시 : 2016년 7월 2 - 3일(1박 2일)


* 산 행 로  : 용대리 - 백담사 - 봉정암 - 대청봉 - 희운각 - 천불동 - 비선대 - 설악동(25k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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