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북알프스 종주
일본 북알프스 종주
첫 해외 원정 산행 길.
기대감과 설레임이 교차한다.
막연한 기대감은 오래 전부터 시작된 일이지만
출발 한 달 전부터는
사소한 것이라도 놓치지 않으려 차곡차곡 준비하면서
기대감 보다는 설레임이 더 커졌다.
가미고지에 도착했을 때의 첫 느낌은
일본이라기 보다는 지리산 어느 골짜기 쯤으로 여겨졌다.
다른게 있다면 눈앞으로 펼쳐지는 골짜기 군데군데 만년설이 서려있다.
8월의 더위쯤 가뿐히 여기고 있는 하얀 눈.
작은 감탄 속으로 북알프스가 차츰 실감되어진다.
첫날 산행
가미고지 해발 1,500미터에서 출발하여 3,000미터까지 올라야 한다.
산행거리도 만만치 않았지만 하늘을 따라 1.5km를 상승 하기에는 부담이 많다.
그렇지만 새로운 세상에 대한 호기심과 자연에 대한 경외심이 있기에 겸손하게 산을 오를 수 있었다.
어라.
길가에는 눈에 익은 꽃들이 반긴다.
설악의 어느 골짜기를 돌았을 때 만났던 꽃들이다.
이국땅에서 고향의 꽃들을 만나는 기분은 묘한 트림이 인다.
무슨 의미일까.
글쎄...
살아가면서 느껴보자구나.
고도를 한참 올렸는데도 넓은 개울에는 물이 넘친다.
잠시 손을 담그고 온도를 잰다.
차갑다.
만년설이 녹아 내리는 물이라 귀한 느낌으로 목을 축인다.
설악의 작은 개울을 따라 졸졸 흘러 내리던 산삼 썩은 물 맛과는 다르다.
어느것이 더 좋다 말 할 수는 없다.
그들만의 개성과 자존심이 있기 때문이다.
고도 2,600미터는 되었으리라.
생전 처음 느껴보는 높이라 가슴으로 작은 전율이 인다.
눈을 밟을 수 있었다.
우리나라 남녘 지방에서는 한 겨울에도 만나보기 힘든 눈을 만지고 느껴보는 맛이 괜찮다.
얼핏 보기에도 눈의 두께는 3~4미터는 족히 되어 보인다.
그 밑으로 물줄기가 끊이지 않고 흐른다.
눈 표면에는 햇살이 닿은 자국마다 빙수를 들고 수다를 조금 떨었을 때처럼 녹아 있다.
설러시를 밝으며 하늘을 향하는 느낌이 참좋다.
정상이 가까워질수록 걸음이 무겁다.
몸도 마음도 고소에 대한 준비가 모자란 탓이다.
이럴 때일수록 천천히 걸어야 하는데
평소 습관을 하루아침에 버리지 못했으니 속이 매스껍다가 머리도 조금 어질하다.
그래도 멈출 수는 없는 길.
마지막 300미터를 남겨놓고 힘이 다 소진되었다.
한 발 한 발 본능적으로 옮기지만 남은 거리는 더 멀어 보인다.
드디어 하늘.
야리가다케 정상에 올랐다.
세상이 다 보일 것 같았는데 그렇지 않다.
아직 수양이 부족한 탓이리라.
미련없이 내려와 산장에 몸을 푼다.
다음날 새벽
아침이 열리기 전에 일출을 볼 수 있으려나 기대를 품고 다시 야리가다케 정상에 올랐다.
열심히 아침 맞을 준비하느라 몸 단장이 바쁜 먼 하늘에게 미안한 마음만 두고 내려왔다.
속인은 일정을 맞춰야 하는 과제를 무시 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하늘은 언제나 곱기만하다.
그에게 위로는 필요치 아니하다.
3,000미터의 고봉을 잇는 능선을 따라 걷는 길
가슴과 발바닥으로 전해오는 이채로운 느낌을 따라 걷다보면 어느새 자연이 된 자신을 발견한다.
멀리 후지산이 보인다.
후지산을 조망하는 것만으로도 행운이라 하는데...
지난 밤 좁은 산장에서 칼잠을 자면서 잡은 꿈이 길몽이었나 보다.
어라..
이건 또 뭐시여.
이 높은 곳에서 새끼를 데리고 눈밭을 오가며 유유자적이다.
'뇌조'라 불리는 길조라 한다.
3,000미터 고봉에서 살아가다보니 하늘을 날 이유가 없었기 때문에 날지 못하는 새가 되었나보다.
까투리를 닮았는데 닭처럼 돌아다니며 먹이를 구한다.
굶지 않을 만큼 먹이가 있을까.
하옇든
후지산과 뇌조를 만났으니 행운이 가득할거야.
큰 행운을 바라기 보다는
무사히 이 산을 내려 갈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이 높은 고봉에서 꽃을 피워서 어쩌겠다고
이렇게 예쁜 옷을 입고 기다리는가.
기특하게 여겨지면서도
차가운 구름 바람에 맞서 애를 쓰는 모습이 애처롭기까지 하다.
왜 하필 이렇게 높은 곳에서 살아가는지 모르겠지만
자자손손 무궁한 안녕을 빈다.
다시 산장에 도착
몸과 마음을 내려놓고 천기를 본다.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감돈다.
아니나 다를까 비가 내린다.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이튿날 아침에 길을 사이에 두고 갈등을 한다.
하산 길을 택할 것인가.
아니면 당초 계획한대로 이어 갈 것인가.
고집을 꺽지 않았다.
자연에 대한 도전이라기 보다는
우리의 열정을 알아 줄 것이라는 믿음을 다졌다.
거센 바람과 비를 맞으며 오쿠호다카다케 정상에 올랐다.
추위가 엄습해오고 하산 길은 미끄러워 긴장을 늦출 수 없다.
한 발 두 발...
마음을 모으고 산을 내려온다.
날머리에 도달 할 쯤.
하늘이 개이기 시작한다.
다시 올라 갈 수는 없는 일.
하늘의 뜻이었기에
아쉬움 보다는 무사히 간절함을 이뤘다는 작은 만족으로 가슴을 여민다.
우리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풍경.
산을 오르면서 사계를 모두 느낄 수 있는 산.
한편으로는 일본이 부럽다.
우리나라에도 이런 산 하나 쯤 있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져보지만
일본이 가지고 있는 갖은 열등을 생각하면서 욕심을 내기보다는 평정심을 찾는다.
일본.
쉬워 보이면서도 결코 쉽지 않은 나라.
지진이나 화산 등 자연 재해가 많아 사람이 살기 힘들 것 같은데도
막상 그들의 세계에 들어와 보면 물산이 풍부한 나라.
타인을 배려하는 마음이 지극하여 욕망이나 다툼이 없을 것 같은데도
우리민족을 잔인하게 지배한 역사를 가진 나라.
언제나 겸손하고 양보를 습관처럼 하는 사람들이
역사를 왜곡하는 후한무치를 일삼는지 알 수 없는 나라.
참 알 수 없는 나라다.
철저하게 이중인격을 가진 나라 일 수도 있겠다는 결론을 조심스럽게 새겨본다.
결코 쉽게 무너지지 않을 나라.
일본.
* 산행일시 : 8월 1일 ~ 8월 5일
* 산 행 로 : 가미코지(1,505m) - 요코오 산장 - 야리사와 롯지 - 야리다가케 산장(3,060m) - 야리가다케 정상(3,180m) - 노오바미다케(3,160m)
- 나카다케(3,084m) - 다이기렛토 - 기타오다카다케(3,160m) - 가라사와다케(3,110m) - 호다카다케 산장(2,996m) - 오쿠호다카다케(3,190m)
- 마에호다카다케(3,090m) - 다케사와 산장(2,180m) - 가미코지
* 산행시간 : 54시간 10분(숙박 및 휴식시간 포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