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 行

금오도 비렁길

桃溪도계 2013. 3. 2. 2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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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오도 비렁길

 

빨간 동백꽃이 뚝뚝 떨어지는 날

섬 사람들의 곤한 삶의 궤적을 따라 걷는다.

바다를 배경으로 살아가면서도 발길 닿는 곳에는 어김없이 밭을 일구었다.

이제 그 밭에는 인기척이 끊기고 대나무들이 빼곡히 들어서서 타인의 범접을 경계한다.

손바닥만한 밭을 일구기 위하여 밭뙈기 보다 더 넓고 높은 축대를 쌓은 사람들.

파도소리에 묻혀 떠난 그들이 보고싶다.

그들이 타령처럼 훑어 낸 삶의 소리를 듣고 싶다.

섬에서 태어나서

답답함을 느끼며 섬을 떠나려고 발버둥치기 보다는

파도와 바람을 피하기 위해 처마끝보다 더 높이 돌담을 쌓고

그 돌담 중간 쯤에 봉창을 내어 바다의 안녕을 살피며

자신에게 주어진 자연을 숙명처럼 받아들고 짐승처럼 일만 하다가 떠난 사람들.

그들의 길을 따라 동백꽃이 말없이 떨어지는 건 우연이었을까.

 

비렁이라고 말하는 벼랑 끝에는 파도가 거세다. 

바다와 섬의 경계에서 오직 태어났다는 이유로 성실하게 살았던 사람들.

그들의 꿈은 무엇이었을까.

권력, 명예, 돈...

아무래도 그들의 꿈은 세속의 꿈과는 거리가 있었을거야.

세속적인 꿈을 꾸었다면 금오도는 벌써 바다에 잠겼을지도 몰라.

배를 띄워 먹을만큼의 고기를 잡을 수 있기를,

손톱이 부러트도록 밭을 일구어 그 밭에 씨앗을 넣고 야무진 열매가 송알송일 맺히기를,

그렇게 살다가 파도가 쓸고 간 모래알처럼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기를 꿈꾸었을거야.

그들의 작은 꿈들이 섬을 건져서 살린거야. 

돈이나 권력으로 이룰 수 없는 그 무엇.

그들은 세상 누구보다도 멋지고 아름다운 꿈을 꾸었던거야.

 

나도 그들을 닮고 싶다.

내가 해야 할 일을 할 수 있기를 꿈꾸며 살다가

흔적없이 사라질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에 태어난 이유를 묻지말고

왜 사는지도 묻지말고

어디로 가는지도 묻지말며

무엇을 이뤄야 하는지도 묻지말자. 

오직 하나,

내가 걸어 온 발자국이 보이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금오도의 섬사람들처럼...

 

 

 

 

 

 

 

 

 

 

 

 

 

 

 

 

 

 

 

 

 

 

 

 

 

 

 

 

 

 

 

 

 

 

 

 

 

 

 

 

 

 

 

 

 

 

* 일      시 : 2013년 3월 1일 ~ 3월 2일

 

* 장      소 : 전남 여수시 남면

 

* 행      로 : 함구미 선착장 - 두포 - 직포 - 학동 - 심포 - 장지(20.9km)

 

* 시      간 : 8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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