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行

시루산

桃溪도계 2012. 12. 16. 22:41
반응형

시루산(한남금북정맥 6구간)

 

 

언제 다시 이 길을 걸을 수 있는 기회가 있을까.

산행내내 그런 생각을 했다.

대간을 이루는 큰 산들은 기품이 있고 멋진 풍광들을 배경으로 하지만, 정맥 구간에 걸쳐 있는 산들은 자그만한 풍모에 아기자기한 모습이다.

작은 골짜기에는 어김없이 한적한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 마을을 이루고 세상을 향하여 팔을 벌려 한아름에 안길 만 한 곳에는 논뼘이 닥지닥지 붙어있다.

국도나 지방도를 따라 가다가 옆눈으로 담을 수 있는 그곳은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오를 수 있을 만큼 친근하고 만만해 보였던 곳이다.

날씨가 추운 탓인지 마을 언저리에는 간혹 경운기 소리가 한 두번쯤 들릴 뿐 인기척이 없다.

음달에 쌓인 하얀 눈에도 사람의 흔적이 보이지 않는다.

짐승들 발자국 두어 줄 가지런히 나 있어 새삼 느낌이 다르다.

인간과 짐승들의 공존.

언뜻 평화롭게 보이기도 하지만 그들에게도 치열한 전투가 진행 중일 것이다.

산 너머 마을에서는 가끔 총소리가 들린다.

고라니나 맷돼지들이 인간의 영역을 침범했나보다.

우리는 아랑곳하지 않고 옹망졸망한 산을 오르락내리락 한다.

그들에게는 나름대로의 아픔이 있겠지만

우리는 우리들에게 닥친 아픔을 묻으려고 이렇게 산에 오른다.

묻는다고 온전하게 사라지는 것이 아님을 알지만 어쩌겠는가.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는 주저앉을지도 모른다.

처음에는 만만하게만 보였었는데

스무개 이상의 고개를 오르락내리락 하다보니 적잖이 지친다.

세상에 쉬운 일은 없다.

다시 한 번 새긴다.

 

쉽거나 가벼운 일로 행복을 채울 수는 없다.

이파리를 다 내려놓은 자작나무숲의 하얀 이정표들은 알고 있겠지.

 

 

 

 

 

 

 

 

 

 

 

 

 

 

 

 

 

 

 

 

 

 

* 일      시 : 2012년 12월 16일

 

* 산 행 로  : 구티 - 탁주봉 - 작은구치 - 적송치상단 - 시루산 - 구봉산 - 벼재 - 대안리 

 

* 산행시간 : 6시간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