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行

설악산 공룡능선

桃溪도계 2012. 10. 7. 16: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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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악산 공룡능선

 

삶을 계획하고

그 계획대로 살 수 있으면 행복하리라 생각한다.

얼핏 생각하기에는 그럴 듯하다.

그럴 일도 없겠지만

계획한대로 삶을 살 수 있다면 과연 행복할까. 

무탈하게 살아갈 수는 있겠지만 결코 행복하지는 못할 것이다.

행복은

인위적으로 계획하거나 만들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설악의 품은

나아가고 싶지도

돌아가고 싶지도 않을만큼 황홀함을 안겨준다.

우리는 당초 단풍을 기대하지 않았다.

몇일 지나면 단풍은 절정이 될 것이고 사람들은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다.

그래서 사람을 피해서 바쁜 걸음을 재촉했던 것이다.

단풍보다는 설악을 원했기 때문이다.

기대하지 않았던 단풍을 가슴에 안고보니 숨을 쉴 수가 없다.

당초 기대했다면 이렇게 가슴이 미어지도록 행복을 느낄 수는 없었을 것이다.

 

설악을 한 번도 경험해 보지 못했던 친구는

무작정 친구를 따라 계획에도 없던 공룡산행을 감행했다.

희운각대피소에서 늦은 아침을 먹고 친구는 공룡의 길을 포기하고 천불동계곡으로 하산했다.

계획했던 공룡능선 산행을 포기했는데도 그는 행복했다.

무사히 설악을 마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공룡능선을 따라 숨을 몰아가던 우리는 1275봉 못미쳐서 예정에 없던 친구들을 만났다.

초등학교 때부터 함께 공부하며 자랐던 친구 세명이 대구에서 설악을 쫓아와서는

맞은 편에서 산행을 이어오다가 험한 공룡능선에서 손을 맞잡고 어이없는 듯 웃었다.

상상하지도 못했던 일 앞에서 막걸리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하는 시간이 오랬동안 기억에 남을 일이다.

이 또한 사전에 계획되었던 일이었다면 우리의 기쁨은 반감되었을 것이다.

 

산행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 오는 길

잠시 내 자신을 비워내고 설악을 마음껏 담았던 가슴이 넉넉해서 좋기는 하지만,

내일부터 벌어질 불확실성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답답하고 불안하다.

어떻게 풀어낼까.

어디서부터 실마리를 풀어야 할지 계획을 세울 수가 없다.

비록 확정적인 계획은 없더라도 담담하게 맞자.

불확실하기 때문에 우리는 살아 갈 가치를 느끼는 것이다.

더 멋진 행복을 위하여

불확실성은 필연이며, 그 불확실성에 도전을 하는 것이다.

공룡도 그렇게 살아 갈 것이다.

그것이 삶이다.

 

 

 

 

 

 

 

 

 

 

 

 

 

 

 

 

 

 

 

 

 

 

 

 

 

 

 

 

 

 

 

 

 

 

 

 

 

 

 

 

 

 

 

 

 

 

 

 

 

 

 

 

* 일      시 : 2012년 10월 6일

 

* 산 행 로  : 오색약수터 - 대청봉 - 중청봉 - 희운각 - 신선봉 - 1275봉 - 관음봉 - 나한봉 - 마등령 - 금강굴 - 비선대 - 설악동

 

* 산행시간 : 1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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