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行

설악산 비경

桃溪도계 2012. 5. 27. 22:46
반응형

 

설악산 비경

 

어디 숨겨 둔 비경이 있을까.

많이 알려 진 곳이라도

자신이 감당할 수 없을 만큼의 풍경을 만나면 비경이라 생각한다.

꼭꼭 숨겨 둔 곳이라도 적잖이 소화 할 수 있으면 비경이라고 느끼기 보다는

자연의 순수함을 느끼게 된다.

 

우리는 순수한 자연 보다는 비경을 찾아서 깜깜한 새벽 2시에 산자락을 뒤척였다.

용대리에서 백담사까지 포장 길 7km를 걸어 올라 가는 길,

하늘에 별이 초롱초롱하다.

백담사 새벽 예불소리가 설악산과 산객들의 안녕을 기원하는 듯하다.

초파일을 앞두고 깜깜한 밤의 틈을 비집고 새어 나오는 불빛에는 분주함이 느껴진다.

영시암까지 가는 길.

별빛은 머리 위로 더욱 가까워지고 우리는 알 수 없는 우주속으로 들어가는 듯하다.

수렴동 대피소에 도착하니 어느듯 여명이 밝아온다.

가만히 숨을 죽이며 수렴동 대피소 뒷자락을 잡았다.

가파른 산 길을 오르며 헉걱거리면서도 비경에 대한 기대감으로 힘든 줄 몰랐다.

옥녀봉에 오르니 천하의 비경이 열린다.

동쪽 공룡능선 너머에는 아침 해를 준비하느라 하늘이 울그락불그락 그리고

반대편으로는 산 안개가 걷히며 열리는 풍경에 탄성이 절로 난다.

오늘 참 일진 좋겠구나.

하루종일 내 가슴에 담을 비경들을 생각하니 가슴이 모자란다.

다시 산을 내려가서 가슴을 넓혀 올 수도 없는 일이고 보니,

오늘은 내 가슴에 채울 수 있을만큼만 담아가리라 다짐했다.

뜀바위까지 이어가는 길이 예사롭지 않다.

간신히 발 디딜 틈을 찾아서 바위를 기어가다시피 한다.

드디어 말로만 듣던 뜀바위에 도착했다.

산행을 리딩하는 전문 산꾼이 자일을 풀어 몸을 단단히 동여 매고는

비경에 취해 흔들거리는 어설픈 산객들의 안전을 도모한다.

하나, 둘 , 셋

지나온 걸음을 디딤돌로 하여 새로운 세상을 향하여 뛰었다.

아찔하고 스릴 넘치지만

'아차' 하는 순간 과거도 미래도 의미 없게 되는 위험한 곳이다.

뜀바위를 지나서 벌렁거리는 가슴을 채 추스르기도 전에 우리는 제지를 당했다.

더 이상 나아가면 안된다는 경고장을 받아 든 것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직원들이 잠도 안 자고 꼭두새벽부터 산 허리를 잘라서 올라 와 기다린 것이다.

위험한 곳이어서 산행을 더 진행하면 안되니 하산 하라는 경고다.

출입금지 구역에 들어 선 우리는 범칙금 경고장을 들고 하산 할 수밖에 없었다.

참 난감한 시간이 흘러간다.

몇 년 전부터, 아니 평생에 한 번.

이 산행을 하기 위해서 별렀었는데 이렇게 제지를 당하고보니 황당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직원들이 고맙기도 하다.

제 1봉도 오르기 전에 하산 명령을 받고 투덜대며 하산을 하고서는 백담사 계곡에 내려 아침 식사를 한다.

어제 밤부터 설쳐서 설악산까지 왔는데 그냥 이렇게 포기하고 집으로 돌아갈 수는 없는 일이라

또 다른 비경을 찾아서 방향을 잡는다.

봉정암 쪽으로 오르다가 길을 찾지 못해서 몇 번 헤매고나니 대원들도 힘이 쭉 빠지는 모양이다.

용아장성릉을 이어가지 못하고 하산해서 속 상한데다

마음을 다지며 또 다른 길을 찾겠다고 나섰는데 찾지 못해서 헤매였으니 의지가 떨어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던 차에 계곡 길을 찾아 들었다.

처음에는 속상한 마음에 별거 있겠나 싶어 별 기대도 없었지만

계곡을 따라 깊이 들어 갈수록 비경이 이어진다.

옥빛을 풀어 놓은 듯한 담과 소가 이어지는 계곡에는 심심찮게 폭포가 있어서 탄성을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새벽부터 길을 찾아, 비경을 찾아 헤매었던 시간.

무엇을 찾았는지 모르겠다.

더 찾아야 할 것은 무엇일까.

글쎄, 무엇을 얼마나 더 찾아야 할 지 모르겠지만

내 마음에 평온을 담을 수 있고,

나로 인해 다른 모든 사람들이 아름다운 행복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오직 그것만이면 좋겠다.

과연 이룰 수 있는 일일까.

아니면 과분한 욕심에 불과할까.

욕심이든 아니든 세상 사람들이 행복하면 좋겠다.

 

산을 내려오려는데 빗방울이 돋는다.

새벽에 별빛이 초롱하여 오늘은 절대 비 맞을 일은 없을 것이다 생각했는데

세상 일은 한치도 앞을 알 수는 없나보다.

천둥이 치고 번개가 번쩍거리는 산길을 비 맞으며 내려왔다.

비경을 찾아 헤집고 다닌 설악의 하루가 참 길다.

 

 

 

 

 

 

 

 

 

 

 

 

 

 

 

 

 

 

 

 

 

 

 

 

 

 

 

 

 

 

 

* 일     시 : 2012년 5월 27일

 

* 산 행 로 : 용대리 - 백담사 - 영시암 - 수렴동대피소 - 옥녀봉 - 뜀바위 - 중간하산 - 백운계곡 - 백운폭포 - 한계령 삼거리 - 한계령

 

* 산행시간 : 12시간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