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行

칠절봉

桃溪도계 2012. 5. 20. 1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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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절봉

 

숲 길

그곳은 풍경보다는 향기다.

녹음이 진한 향기 사이로 별이 돋 듯 야생화가 반짝반짝 피어 오른다.

인적 드문 오지 숲 길에는

작년 겨울의 폭설에 아름드리 나무들이 제멋대로 쓰러졌다.

원시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한 숲 길을 걸으면

나는 어느새 타임머신을 타고 오랜 옛날을 걷고 있다.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던 그 어느 때,

이 숲 길을 처음 걸었을 사람을 생각하며 걷는다.

그들은 왜 이 숲 길을 걸었을까.

사냥을 하기 위해서 걸었을까.

아니면 전쟁을 피하기 위해서 이 숲에 들어왔을까.

나는 오늘 무슨 일로 이 숲에서 걷는가.

 

나는

번잡한 세상으로 부터 벗어나기 위한 간절함이 있어서 걷는다.

다시 세상으로 내려가면 복잡하고 골치아프게 살아갈 줄 알지만

잠시 세상으로 부터 나를 내려 놓고

찬찬히 나는 누구인지를 꼼꼼히 짚어본다.

나는 무엇이길래 이 숲 길에서 헤매는가.

야생화 꽃들에게 물어본다.

그들은 안다.

그래서 꽃을 방긋 피워 올렸다.

지난 겨울 그 모진 추위에도 온기를 잃지 않으려고 애 쓴 만큼 더 예쁘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포기하지 않게 하는가.

나는 안다.

그것은 생명이다.

태초에 생겨 날 때부터 끊어지지 않고 생명을 이어가야 하는 숙명을 간직했기 때문이다.

내가 이 숲 길을 왜 걷는지

꽃들을 보면서 어렴풋이나마 짐작 해본다.

 

일년 만에 다시 찾은 숲 길은

철 따라 꽃이 피고 질 뿐 변화가 느껴지지 않는 곳이다.

숲에 드는 순간 나는 진한 녹색의 호흡으로 몸을 치장하고

원시인이 되어 변화를 멈추는 경험을 한다.

일행 한 명이 길을 잘 못 들어 잠시 흔들린 시간이 있기는해도

그것은 꽃이 피고 지는 정도의 작은 변화일 뿐이다.

산을 내려오면 우리는

잠시 멈춰 뒀던 스톱워치를 다시 켜고 변화를 따라야만 한다.

좋든 싫든

시간을 쫓아서 공간을 잠식해 나가야만 한다.

 

 

 

 

 

 

 

 

 

 

 

 

 

 

 

 

 

 

 

 

 

 

* 일     시 : 2012년 5월 20일

 

* 산 행 로 : 용대 자연휴양림 - 매봉 분기점 - 칠절봉 - 용대 자연휴양림

 

* 산행시간 : 7시간 3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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