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 行

창덕궁

桃溪도계 2012. 4. 22. 15:54
반응형

 

창덕궁

 

꽃들은 잘 지냈을까.

지난 한 해 동안 마음을 다잡고

때를 기다렸던 꽃들은 새 봄 궁궐의 뜰을 어떻게 장식했을까.

 

올 봄은 유난히 지척거리다가 꽃 피우는 시기를 미뤄왔다.

그런 탓에 지난 며칠간 진달래 개나리 벚꽃 복숭아꽃..

한꺼번에 난리를 피듯 꽃잔치를 마무리 했었다.

궁궐의 봄은

아무때나 아무에게나 보여 주고 싶지 않았나 보다.

궁궐의 봄을 손꼽아 기다렸었는데 꽃을 볼 수가 없다.

봄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휴일에 

조각난 작은 미련들을 주섬주섬 챙겨서 부비적거리며 궁궐에 들어섰다.

아니나 다를까 꽃이 없다.

늦가을 처럼 스산한 분위기에

궁궐의 지붕에 얹힌 기와는 왠지 모르게 처량함을 더한다.  

어제부터 내린 비만 아니었더라도 이렇게까지 황량하지는 않았으리라.

그나마 다행인 것은

수양벚나무 한 그루가 비를 맞으며 바람에 흔들린다. 

이렇게 귀할 줄 몰랐다.

철쭉이 피기까지는 아직 보름 정도 기다려야 할 듯하다.

꽃이 피는 계절에 왔지만 꽃을 보지 못하는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 줄까.

그냥 지나치는 인연처럼 모른척 할까.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꽃 피는 시절에

그 꽃을 보기 위하여 발걸음을 옮겨 왔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행복을 갈무리 해야겠다.

내가 행복하고

궁궐의 갖가지 꽃나무들이 행복 할 것이다.

 

아름다운 봄날에

궁궐의 꽃을 보러왔다가 꽃은 보지 못하고 비를 맞고 돌아서는 길이

쓸쓸하기 보다는 나도 모르게 발걸음이 가볍다.

반드시 꽃을 봐야만 행복한 것은 아닌가보다.

꽃을 보러 왔다가 꽃을 보지 못하고 돌아가는 길도

또 하나의 행복의 길이었음을 새겨본다.

 

 

 

 

 

  

 

 

 

 

 

 

 

 

 

 

 

 

 

* 일      시 : 2012년 4월 22일

 

728x9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