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월출산
'월출봉에 달 뜨거던 날 불러주오'
흥얼거리며 가볍게 다녀오리라 떠난 산행이었다.
그런데 왠걸
아침 일찍부터 서둘러 도착한 월출산의 산세는 위압감을 느끼게 한다.
영암 벌판에 홀로 우뚝 솟아 태산의 위엄이 서려있다.
'태산이 높다 한들 하늘아래 뫼이로다.
오르고 또 오르면 못오를리 없건만은...'
호흡을 몰아가며 가파른 등로를 따라 산중턱에 있는 구름다리에 오르니 시야가 탁 트인다.
발을 딛고 있는 산 아래가 바로 벌판으로 이어지는 형상이 이채로운 느낌이다.
이 평온한 벌판 위에
무슨 소원을 담아 오롯이 산을 세웠을까.
아무래도 무슨 연유가 있었음이 틀림 없으리라.
휘영청 밝은 달을 바다에서 올려 하늘에 걸려니 힘도 들고 생뚱 맞아서
하늘 가까이 달을 숨겼다가 올리기 위해 월출산을 만들었던 것은 아닐까.
그래서 옛 사람들이 달 뜨는 월출산을 바라보며 애절하게 노래를 했는가벼.
수석을 전시해 놓은 듯한 기암들은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꼭 제자리에 박혀있다.
아홉 물 웅덩이를 이고 있는 구정봉.
힘이 넘치게 생긴 남근바위
그 남근바위를 바라보며 목이 길어진 여신을 닮은 베틀굴.
'천지조화' 라는 말이 이를 두고 한 말인가 보다.
아직은 꽃도 잎도 없는 산이어서 다소 생경스럽다.
다행히 등로를 따라 줄지어 선 사람들의 알룩달룩한 옷매무새와 웃음이 있어 산은 한층 생기롭다.
정상에 가까워지면서 봄바람이 예사롭지 않다.
이 산에 흙이 없는 이유를 이제는 알겠다.
이렇게 바람이 드세니 한점 흙인들 남았을리 만무다.
그래서 이렇게 바위만 남아서 맹숭맹숭한 세월을 깍는다.
천황봉 정상에 서서 내려본다.
가파른 암릉들이 이어지다가 벌판에 닿으면 아무일 없었던 듯 멈춘다.
넓은 벌판에
곡식은 넘쳐나고 사람들은 풍요롭다.
'아리랑'을 숨길 수가 없겠구나.
이 아름다운 산과 들에
사람들이 노래를 부르지 않고 베길 수 있었겠는가.
월출산을 배경으로 삶을 이어 온 영암 사람들은
마음이 너그럽고 인정이 넘칠 수 밖에 없지 않겠는가.
울퉁불퉁한 산 길이지만
월출산은 자신만의 강건한 리듬이 있고 까칠한 향기가 있다.
거친 바람 속에서도 봄의 속삭임이 있듯이 영암의 들녘과 산에도 초록이 꿈틀거리고 있다.
하루종일 기암을 보고 암릉을 밟으면서도 바위가 싫지 않은 까닭은
월출산이 내어주는 풍요롭고 선한 기운 탓일 것이다.
산을 내려오면서
월출산을 노래한 시가 유난히 많았던 이유를 조금은 알 것 같다.
다음에 또
맑은 마음으로 조우하기를 바라며 산행을 접는다.
* 일 시 : 2012년 3월 25일
* 산 행 로 : 개신리 - 천황사 - 사자봉 - 천황봉 - 구정봉 - 발봉 - 도갑사 -
* 산행시간 : 4시간 30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