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악산
운악산
행운이란
돈으로 살 수도 없으며
억지로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다.
한 마음으로 무심하게 산에 오르다 보면
가끔은 이렇게 행운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행운을 준비하지 않았다.
준비하고 싶어도 준비할 줄 모른다.
때 아니게 비가 내려서
'산에 올라 갈 수 있으려나?'
'시간 되면 산에나 올라가지 뭐'
이렇게 시작된 산행이어서
아이젠도 스패치도 준비하지 못했다.
첫 눈을 산에서 맞고
첫 발자국을 열면서 걸어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행운이다.
하늘과
발이 푹푹 빠지는 눈 덮인 산
그리고 나.
큰 산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두려움을 갖게도 했지만,
평소에 자주 다니던 길이었기에
하얀 눈 세상을 마음껏 가슴에 쓸어담으면서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벅찬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기에
신발이 젖어 발이 시려도 견딜 수 있었다.
오롯이 나만의 세상을 잠시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세상을 다 가진 느낌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린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행복한 시간이었다.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 뭉그적거리던 가을의 자락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는데
나는 설익은 겨울을 만나러 떠난 길이었던 셈이다.
그 길에 낮익은 첫 눈이 내리고 나는 황홀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눈밭에 조금 묻어 두었다.
내 마음이 세상의 빛에 퇴색될 때마다
하얀 눈을 꺼내러 산에 오르겠다며 다짐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가끔은 이렇게 뜻하지 않게 행운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또 다른 기대감이다.
올 해 첫 눈을
첫 발자국으로 밟았으니
삶이 팍팍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긴다.
열정과 지식만으로 세상을 다 채울 수는 없다.
가끔 이렇게 행운을 섞으며 살 수 있다면
삶이 너무 딱딱하거나 건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힘이 들 때나
괴로울 때도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다는 명제를 지우지 말아야겠다.
* 일 시 : 2011년 12월 3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