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行

운악산

桃溪도계 2011. 12. 4. 1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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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악산

 

 

행운이란

돈으로 살 수도 없으며

억지로 만들 수도 없는 것이다.

한 마음으로 무심하게 산에 오르다 보면

가끔은 이렇게 행운도 얻을 수 있는 것이다.

 

나는 행운을 준비하지 않았다.

준비하고 싶어도 준비할 줄 모른다.

때 아니게 비가 내려서

'산에 올라 갈 수 있으려나?'

'시간 되면 산에나 올라가지 뭐'

이렇게 시작된 산행이어서

아이젠도 스패치도 준비하지 못했다.

 

첫 눈을 산에서 맞고

첫 발자국을 열면서 걸어간다는 것은

아름다운 행운이다.

하늘과

발이 푹푹 빠지는 눈 덮인 산

그리고 나.

큰 산에 혼자 있다는 사실이 조금은 두려움을 갖게도 했지만,

평소에 자주 다니던 길이었기에

하얀 눈 세상을 마음껏 가슴에 쓸어담으면서 정상까지 오를 수 있었다.

 

벅찬 감동을 주체할 수 없었기에

신발이 젖어 발이 시려도 견딜 수 있었다.

오롯이 나만의 세상을 잠시 가질 수 있었다는 것은 얼마나 큰 행운인가.

세상을 다 가진 느낌

세상을 온통 하얗게 덮어버린 자부심 같은 것을 느낄 수 있었으니 행복한 시간이었다.

 

미련을 떨치지 못해서 뭉그적거리던 가을의 자락이 아직 조금은 남아 있는데

나는 설익은 겨울을 만나러 떠난 길이었던 셈이다.

그 길에 낮익은 첫 눈이 내리고 나는 황홀함을 감출 수 없었다.

그래서 눈밭에 조금 묻어 두었다.

내 마음이 세상의 빛에 퇴색될 때마다

 하얀 눈을 꺼내러 산에 오르겠다며 다짐하는 것이다.

 

살다보면

가끔은 이렇게 뜻하지 않게 행운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은

삶의 또 다른 기대감이다.

올 해 첫 눈을

첫 발자국으로 밟았으니

삶이 팍팍하지 만은 않을 것이라는 기대감도 생긴다.

열정과 지식만으로 세상을 다 채울 수는 없다.

가끔 이렇게 행운을 섞으며 살 수 있다면

삶이 너무 딱딱하거나 건조하지는 않을 것이다.

 

힘이 들 때나

괴로울 때도

세상은 언제나 아름답다는 명제를 지우지 말아야겠다.

 

 

 

 

 

 

 

 

 

 

 

 

 

 

 

 

 

 

 

 

 

 

 

 

 

 

 

 

 

 

 

 

 

 

 

 

 

 

 

 

 

 

 

* 일    시 : 2011년 12월 3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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