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 行

수학여행

桃溪도계 2011. 7. 17. 1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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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 변하지 않는 것이 있다. 학창 시절 우리들이 가졌던 추억은 격한 세월 속에서도 변하지 않는다. 변하기보다는 오히려 더 선명하게 가슴에 맺혀 있다. 그래서 잊은 듯이 지내다가도 불쑥 꺼내보면 영롱하게 반짝인다.

 

그러고 보니 30년도 넘었다. 빛이 바래어 다소 낯선 일기를 꺼내어 여행을 하기로 했다. 지난번에 함께 여행하기로 날을 잡았다가 불순한 일기로 연기하였던 터라 그 설렘이 더 커진다. 버스에 타자마자 보따리를 풀어낸다. 과자, 사이다, 소주, 거기에 삶은 계란이 빠질 수는 없지. 빠질 수 없는 것 하나 더, 바로 끊이지 않는 수다. 우리를 태운 버스는 밤을 새워 씩씩거리며 달려도 수다는 지치지 않는다. 수학여행인데 뭐.

 

세상이 마음먹은 대로 순탄하면 얼마나 좋을까. 30년이 더 넘은 수학여행도 처음부터 삐걱거린다. 외도를 먼저 여행하기로 했는데 짙은 해무로 인해 배를 띄울 수가 없단다. 이 허탈함을 어찌할꼬. 수습 끝에 소매물도를 먼저 가기로 했다. 거기도 마찬가지였다. 배를 띄우기가 쉽지 않은가 보다. 한참을 서성이며 기다렸다. 이윽고 배에 올라탄 우리들은 설레는 마음과 기대감을 마음껏 꺼내 놓았는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오직 희뿌연 해무만 세상에 가득 채워져 있다. 그래도 우리의 배는 수다를 떨며 달린다.

 

소매물도에 발을 닿을 때까지도 해무는 세상을 가리고 있었지만, 우리는 실망하기보다는 또 다른 기대감으로 산을 오른다. 꼼짝도 하지 않을 것 같던 해무가 움직이기 시작한다. 바람이 휘익 불면 연극무대의 장막을 걷듯 신비한 섬과 파란 바다가 열렸다가 이내 감추어진다. 아쉬움은 많았지만 그런대로 행복하다. 아무래도 그렇게 준비했나 보다. 완전히 열었다가는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이 마음을 다칠까 봐 이렇게 보일 듯 말 듯 열릴 듯 말 듯.

 

아쉬움을 뒤로하고 다시 외도행 배에 오른다. 잠깐 시간이 있어 바람의 언덕에 올라 이국적인 풍취를 마음껏 담았다. 아침부터 서운했던 가슴이 이제는 조금 풀어지는 것 같기도 하다. 외도로 가는 길에 들른 해금강은 신비롭기까지 하다. 마음 같아서는 들러서 막걸리 한 잔 하면서 한참을 쉬었다가 가고 싶지만 쉽게 마음이 열리지 않는다. 해금강의 위엄이 우리를 압도하기 때문이다. 그냥 스치듯 지나갈 수 있었던 것만으로도 소문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해금강이 기침이라도 하는 날에는 바다가 푹 꺼져 버릴 것 같은 분위기다.

 

외도를 가꾸기 위해 얼마나 공을 들였을까. 외도를 둘러보는 내내 그 생각만 꼬리를 문다. 처음부터 관광객 유치를 목적으로 하지는 않았을 텐데, 지금은 인산인해를 이룬다. 외도는 아름답기는 하지만 너무 인공적인 맛이 잔상으로 남아 마음에 걸린다. 

 

외도를 떠나 다시 버스를 타면서도 우리들의 수다는 끊이지 않는다. 30년 이상을 참았으니 그럴 만도 하겠지만, 한편으로는 지치지 않는 수다가 대견스럽기도 하다. 여행은 뜻하지 않은 사람을 만나게 하는 매력이 있다. 또래의 사람들 몇 명, 그들도 친구들과 함께 마음을 별러서 여행을 왔나 보다. 우리는 잠시 그들과 추억을 장식했다. 오랜 추억으로 더 아름답고 행복한 여행이기를 바란다.

 

친구들아!

오랫동안 건강하기를 바란다.

다음에 또 추억의 쪽지를 꺼내면 그대들의 맑은 웃음과 행복한 수다를 다시 볼 수 있으면 좋겠다.

 

[일     시] 2011년 7월 16일

[행 선 지] 소매물도 -몽돌해변 - 바람의 언덕 - 해금강 - 외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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