記 行

청산도

桃溪도계 2011. 4. 3. 22: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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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산도

 

목적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활 시위를 떠나는 순간 목적지를 잃어버린 듯이 살아왔을 뿐입니다.

이렇게 깨달으면서도 돌아서면

표적을 잃어버린 화살처럼 방황 할 것이 분명합니다.

 

궁극적으로 내가 가야 할 길은

삶의 이정표가 끝나는 종착점 입니다.

바삐 가야 할 아무 이유도 없는데 허겁지겁 바쁘게만 살아왔습니다

바삐 가면서도

어디를 가는지 망각한 채 본능인 것처럼 앞으로만 달렸습니다.

 

청산도는

내게 쉬어가라고 말합니다.

어차피 갈 길이 정해졌는데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다고 합니다.

자칫 서두르다가는 왜 왔는지도 모른 채 돌아서야 할지도 모른다고 합니다.

세상 번뇌 다 내려놓고

산과 바다, 그리고 인심 두둑한 사람들과 살가운 안부를 나누며 가도 늦지 않다고 합니다.

 

그곳에는

그들만의 느긋하고 순박한 지혜가 있습니다.

산비탈을 그냥 묵힐 수 없었던 그들은 다락논을 만들고,

농지가 모자라는 척박한 섬에서 한 치의 땅이라도 더 넓히려고 수로를 덮어 그 위에 벼를 심어 구들장논을 만들었습니다.

세월이 흐르거나 말거나

그들은 그들만의 걸음으로 세상을 살아가는 지혜를 얻었던 것입니다.

 

뭍에 사는 사람들이

짬을 내어 그들에게 다가갑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묻고 싶었던 까닭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말이 없습니다.

새마을 운동 때, 지었던 마을 창고가 세월을 잊은 듯 고스란히 보존되어 있고

작은 골목길에는 시멘트 담장과 돌담이 정담을 나누듯 나란히 서 있습니다.

외지 사람들이 들락거리면서 인심에 흠집을 냈을 것 같지만,

그들의 인심은 상하지 않았습니다.

바닷 바람이 전해주는 흐름따라

파도가 너울대는 이유를 아는 까닭입니다.

아마도 그들은

혼을 돌아 볼 겨를도 없이 좇기 듯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을 깨닫은 듯합니다.

 

청산도는

왜 거기에, 언제까지 웅크리고 있어야 하는지 잘 아는 듯합니다.

빨리 가야 할 이유가 없기에 지칠 이유도 없다는 것을 알겠습니다.

 

비가 내리는 청산도를 하루종일 걷다가

나는 다시 내 삶의 울타리로 돌아옵니다.

그를 닮고 싶은 마음에 자꾸 외눈을 감아 보지만, 그럴수 없다는 것을 나는 압니다.

아직 내 수양이 부족한 까닭입니다.

 

 

 

 

 

 

 

 

 

 

 

 

 

 

 

 

 

 

 

 

 

 

 

 

 

 

 

 

 

 

 

 

 

 

 

 

 

 

 

 

 

 

 

 

 

 

 

* 일      시 : 2011년 4월 3일

 

* 행 선 지  : 청산도 슬로길

 

* 행      로 : 범바위 - 권덕리 - 앞개 갯돌밭 - 봄의왈츠 세트장 - 서편제 촬영지 - 도청항

 

* 시      간 : 4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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