山 行

지리산 종주(5)

桃溪도계 2010. 6. 20. 21: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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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리산 종주

 

그 길을 걸으면

길이 다 같지 않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智異라 했던가.

나는 늘 잘난체 하면서 살아가지만

매번 길의 선택에서 남다른 고민을 한다.

편하고 좋은 길을 가겠다는 나의 욕심이 크기 때문일 것이다.

나 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사람들은 욕심의 카테고리를 쉽게 벗어나지 못하고 살아 갈 것이다.

욕심을 비우겠노라고 다짐하는 순간에도 욕심을 챙기는게 인간의 지극한 본성은 아닐까.

 

 

 

 

 

 

 

  

 

 

 

다섯번째 지리산 종주 길

내게는 소중한 마음가짐이다.

언제나 그랬듯이 내가 지리산에 오르는 이유는

나의 길을 찾아가는 숭고한 의식이다.

비뚤어졌으면 따끔하게 충고해 달라고 길을 묻는다.

 

 

 

 

 

그런데 지리산에 길이 보이지 않는다.

입에 단내가 나도록 걸어도 길은 열리지 않는다.

맷돼지가 걸었을법한 작은 오솔길은

자욱한 안개에 쌓여있고

하늘을 올려보아도 산문이 열리지 않는다.

 

 

 

 

 

 

 

 

 

 

 

 

 

 

 

 

 

 

 

지리산 산행 계획을 잡고부터는

삼도봉 가는 길 쯤에서 맞게 될 능선의 파노라마를 떠올리며

나의 길을 가늠해 보는 것인데

한치앞도 보이지 않는 길에서 나의 길을 찾기란 여간 힘든게 아니다.

그렇게 아름다운 산길을 종일 걸어도 감탄 할 일이 없다.

그냥 묵언 수행 하듯이 꿋꿋하게 앞만 보고 걸을 뿐이다.

길이 어디로 나 있든지

내가 지나온 길이 어디에 묻히든지 상관할 바 아니다.

때로는 삶이 이렇게 앞뒤 분간 할 수 없을 만큼 오리무중일 때도 있나보다.

그렇다면 그것도 하나의 깨달음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 것도 또 하나의 길이다.

 

 

 

 

 

 

 

 

 

 

 

 

 

 

 

다음에 어느 때에

다시 지리산을 오를 때에는 오늘 걸었던 지리산의 길을 분명하게 기억 할 것이다.

길이 보이지 않는 길에서

삶을 담담히 써 내려가는 구도자의 염원처럼 길을 따라 걸었던 것은

또 다른 지혜를 배우는 길목이다.

 

 

 

 

 

 

 

매번 시간에 쫓기어 노루목에서 반야봉으로 발길을 돌리지 못한 아쉬움이 컸었는데

이번에 반야봉에게 안부를 여쭈고 온 것은 행복한 걸음이었다.

지리산에는 또 하나의 길이 있음을 마음에 새길 수 있어서 다행이다.

 

 

 

 

 

 

 

 

 

 

 

 

 

 

 

고사목은 예전과 다름없이 늘 그자리에 서 있다.

내가 그를 찾아온 까닭을 아는지 모르는지 무표정한 얼굴을 안개에 묻은채 아는척도 하지 않는다.

작은 안개의 알갱이들이 부딪치는 소리만 들릴뿐

반갑게 안부를 건네도 소리가 건너가지 않는다.

그래도 내마음을 알겠지.

 

 

 

 

 

 

 

 

 

 

 

 

 

 

 

안개에 쌓인 지리산은

수묵화 같이 담담하고 담백함이 깃들어 있다.

멀리 길이 보이지는 않지만

이렇게 그림같은 풍경에 내가 빠질 수 있어서 조금은 위로가 된다.

안개가 없었다면 멋진 풍경만을 생각했을텐데

안개가 있어서 온전히 나와 산 길만을 생각할 수 있는 기회였다.

 

 

 

 

 

 

 

 

 

 

바람이 불어도

비가와도

안개에 둘러 쌓여도 꽃은 핀다.

자연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것은 지리가 일깨워준 또 하나의 길이다.

 

 

 

 

 

 

 

 

 

 

 

 

 

 

 

 

 

다음에 지리에 오를 때에는

좀 더 성숙한 마음 가짐으로 지리산을 품을 수 있을 것이다.

지리산에 오르면

길이 많다는 지혜를 배울 수 있어서

나는 다시 오를 수 밖에 없으리라.

 

 

* 일     시 : 2010년 6월 19 - 6월 20일

 

* 산 행 로 : 성삼재 - 노고단 - 연하천 - 노루목 - 반야봉 - 삼도봉 - 벽소령 - 세석 - 장터목 - 천왕봉 - 중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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