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지산
민주지산
그렇게 많던 눈은 마술같이 사라졌고
산에는 아직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없다.
겨울을 보내고 있는중.
봄을 맞고 있는중.
그래서 산에는 얼었던 겨울이 녹느라 질퍽하다.
더구나 엊그제 봄비가 내려 엉망진창이다.
겨울과 봄이 엉켜있는 산은 무대에 오르기 위한 리허설 중이다.
그래서 어딘가 모르게 어색하고 썰렁한 느낌이다.
그래도 우리는 산을 오른다.
리허설만 보아도 무대에 오를 진지한 아름다움을 짐작 할 수 있기 때문일 것이다.
땀을 흠씬 흘리면서 가쁜 호흡을 겨우 진정 시키고나니
멀리 산맥이 열린다.
덕유산 향적봉과 더 멀리 지리산 천황봉이 어렴풋이 눈길에 든다.
사방팔방 겹겹이 쌓인 산 능선들이 산인들의 마음을 다독인다.
단풍이 드는 가을이나
흰 눈이 마음껏 내린 겨울이면 참 멋지겠다는 생각이 든다.
겨울도 봄도 아닌 황량함이 산행의 맛을 밋밋하게 만드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산에 오르면
우리는 긴 호흡을 내려 놓을 수 있어서 좋다.
세상의 그 어떤 것도 양보하고 싶지 않았던 옹졸한 이기심과
잘난척하며 나 보다 작은 이들을 무시했던 오만과
큰 마음으로 세상 사람들에게 인사를 듣는 이들에게는 질투를 서슴치 않았던 나
잠시나마 못난 나를 조금은 내려 놓을 수 있었던 산
그는 내가 바라는 모든 것을 품어줄 수 있기 때문에
나는 그의 품으로 든다.
그럴 때마다 나는 무한히 행복하다.
그렇다.
산에 오르는 것은
결국 나의 행복을 찾으려는 또 하나의 시도일 것이다.
능선을 이어가던 중
폭풍우가 내리치던 어느 여름날에
나뭇가지가 부러지면서 찢어졌고...
그렇게 아픔을 간직한채로 상처가 아물어 이렇게 천연의 액자가 만들어졌다.
얼굴을 담아 웃어보고 싶다.
멋적은 웃음이 이 산에 잘 어울릴까...
전라북도, 충청북도, 경상북도의 경계를 이루는 삼도봉
사람들은 특별한 의미를 새긴다.
그냥 하나의 산봉우리일 뿐인데
사람들이 만들어 놓은 울타리의 경계가 사뭇 진지하다.
무슨 의미일까.
오히려 있어서 거추장 스러운게 경계가 아닐까.
그렇다.
자연에는 인간의 경계가 필요없다.
그런데 인간은 끝없이 경계를 만들고
그 경계를 위하여 목숨을 걸고 싸우기도 한다.
산을 내려오면서
못난 인간의 경계를 곰곰히 헤아려 본다.
없어도 될 경계 때문에
나는 내일도 어김없이 얼굴을 붉힐 것이다.
조금만이라도 경계를 지울 수 있으면 좋겠다.
산은 내 마음을 조금이라도 알까.
물한계곡을 따라 하산 길이 이어진다.
봄마중 물이 넘실넘실 계곡을 채우고
작은 폭포도 힘을 얻어
우쭐거리는 폼이 귀엽다.
이 산을 내려가면 나는 좀 더 지혜로운 삶을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작은 성공에 잘난척 하지말고
작은 실패에 용기를 잃지 않았으면 좋겠다.
* 일 시 : 2010년 2월 28일
* 산행로 : 도마령 - 각호산 - 민주지산 - 석기봉 - 삼도봉 - 황룡사 - 물한계곡
* 산행시간 : 6시간
* 위 치 : 경북 금릉, 전북 무주, 충북 영동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