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량도 지리망산
사량도 지리망산
한 해를 보내기 위하여
또 새로운 한 해를 맞기 위하여 산에 올랐다.
자주 산에 오르지만
해의 경계에서 산에 오른다는 것은 특별한 의미를 갖게 한다.
사량도에 어둠이 걷히고 여명이 트일 무렵
우리는 잠을 설친 탓이라 다소 초췌해진 몰골로 아침을 털며 지리망산으로 오른다.
산 능선에 오르기 위하여 땀을 흘리다가 되돌아 보는 바다에는 붉은 빛이 감돈다.
해가 뜨려나보다.
걸음을 재촉하여 능선에 올랐을때,
아직 달이 지지 않고 있다.
색깔도 비교적 노르스름한 달 빛은
새해를 맞으려면 아직 한참을 기다리라는 신호처럼 느껴진다.
그것은 순간이었다.
한숨 돌릴 틈도 주지 않고 달빛은 숨어버렸고 반대편 바다에서 붉은 해가 떠오른다.
경인년의 붉은 태양이 가슴 뭉클하도록 하늘을 향하여 크게 웃는다.
세상은 고요해지고
세상 만물은 태양이 중심이었다.
저 해를 가슴에 담고 뛰자.
에너지가 모자라면 태양을 가슴에서 꺼내 쓰면 되리라.
그렇게 앞만보고 달리자.
멀리 삼천포 화력발전소의 굴뚝에서는 쉬지않고 연기를 뿜어낸다.
우리가 단 한 순간 만이라도 전기를 쓰지 않으면
저 굴뚝도 쉬어갈텐데
해가 바뀌는줄도 모르고 저렇게 하늘을 향해 원망하듯 연기를 뿜어낸다.
가끔은
저 굴뚝에서 연기가 피어오르지 않는 날을 기다려본다.
지리망산은
그리 높지 않는 산이지만
바다에 에워싸여 있는 산이어서 그런지
그 자존심이 날카롭기 그지없다.
온 산이 바위로 만들어진 듯하며
그 바위마저도 편암으로 이루어진듯
칼집을 빈틈없이 저며놓았다.
여성 산인 한 분이 잘게 칼집을 내어놓은 깍아지른 바위를 조심스럽게 내려오고 있다.
되돌아서 보는 가슴이 저린다.
내가 저 바위를 어떻게 내려왔을까.
산 능선에서 바다를 보는 품새가 일품이다.
좌우로 바다가 쭉 펼쳐져 있어서
바다 한 가운데에서 큰 배를 타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통영의 바다에는
굴과 홍합의 양식장이 밭을 일군 듯 펼쳐져 있다.
이곳 어민들의 꿈이 무럭무럭 자라는 곳이다.
그 사이로
배 두어척 바다를 가른다.
지척에 있는 양식장에
어설픈 산인들의 욕심이 뿌려질까봐 경계하는 듯 재빠르게 양식장의 울타리를 쉼 없이 경계한다.
바위를 잘라 놓은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왜 그랬을까.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바위를 저렇게 자르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을까.
그렇지만,
아무도 그의 노고를 안타까워 하지 않는다.
그냥..
처음부터 아무 이유없이 그랬거니 생각하는 듯하다.
눈 앞에 깍아지른 바위가 버티고 있다.
내가 가야 할 길은 저 길 뿐이다.
운명처럼 밧줄 하나에 매달려 나에게 주어진 길을 가야한다.
나는 벌써부터 알고 있었다.
내가 가야 할 길..
그 길은 평탄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나는 안다.
때로는 험하고, 때로는 아찔한 길을 실수 없이 걸어야 한다.
가끔은 웃으면서 걸을 수 있어야 한다.
항구에 배 한 척이 꿈틀거리고 있다.
새해를 맞아 용틀임하듯 몸부림을 치고 있는 저 배에게서 나는 또 하나의 향기를 얻는다.
삶의 향기는
억지로 꾸미는 것이 아니라
자신에게 주어진 목표를 향해 자신의 길을 갈 때,
그 향기는 더욱 진하고 그윽하게 그려 질 것이다.
나 보다 먼저 이 길을 간 산인들이
증표처럼 달아놓은 꼬리표가
안전을 기원하는 부적처럼 바람에 나부낀다.
가끔은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한 두개의 꼬리표를 만나면 반색을 한다.
내 삶의 이정표이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언제나,
누구나 미래의 삶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 불안감으로부터 해방감을 찾기 위하여 산에 오르기도 하지만,
가끔은 이렇게 돌을 쌓아
자신의 불행을 피해가고자 색다른 의미를 부여해 본다.
어떤 때에는
돌 하나에
내 마음이 안정되고 푸근해짐을 느끼는 것은
그만큼 나약함의 반증일까.
산 길을 걷다가
앞으로 걷다가
줄어들지 않는 길을 원망하다가
그렇게 지쳐갈 즈음
뒤돌아 보는 길은
나에게 대견스러운 용기를 준다.
스스로 지나온 발자국을 복제해서 앞으로 나갈 수 있는 힘을 얻는다.
통영의 앞바다를 마음껏 가슴에 담을 수 있었던 새해의 첫 날
저 넓은 바다처럼
나는 세상을 향하여 넓은 가슴을 가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저 넓은 바다처럼
세상 모든 아픔을 포용하고 웃을 수 있으면 좋겠다.
내게 주어진 삶을 좀 단순하게 살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
삶이란
굳이 복잡하고 화려하게 살 필요가 없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주는 바다를 닮아 본다.
* 일 시 : 2010년 1월 1일
* 산 행 로 : 돈지 선착장 - 365봉 - 지리망산 - 불모산(달바위산) - 안부 삼거리 - 가마봉 - 옥녀봉 - 대항 삼거리
* 산행시간 : 4시간
* 위 치 : 경상남도 통영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