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 라 톤

2009 춘천마라톤(Full-3)

桃溪도계 2009. 10. 26. 1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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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름다운 여정 - 2009 춘천마라톤

 

 겁 없이 시작했던 마라톤이었는데 일년을 넘기면서부터 조금씩 두려움을 알아간다.

두려움을 알아가는 만큼 마라톤의 생김도 눈에 차츰 들어온다.

그렇지만 마라톤을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한 대답은 쉽게 내 놓을 수 없다.

아직 내 가슴에는 멍이 들지 않기 때문이다.

하늘을 담으려했던 가슴에 멍으로 채우고 다시 그 멍을 다 지우려면 얼마나 많은 시간이 필요할까.

어쩌면 죽을 때까지 마라톤을 해야 하는 이유를 알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면 어쩌랴.

오늘 내가 이렇게 뛸 수 있는데..

더 이상은 묻지말자.

 

처음 5킬로미터는 아무 생각없이 발로 뛰면서 머리로 생각한다.

아직은 발이 성성하여 디딛는 발자국에 힘이 넘치고 머리에는 의기가 충만하여 두려움을 모른다.

마라톤 횟수를 늘려가면서 처음 5킬로미터의 소중함을 알기에 발이 요량없이 앞서가는 것을 머리로 제어한다.

그것은 절대 법칙이다.

가끔은 동료들을 따돌리고 튀어 나가고 싶은 충동이 일지만 이제는 참을 수 있다.

 

그 다음 4킬로미터는 종아리로 뛰면서 가슴으로 생각한다.

발의 근육이 이완되고 종아리의 근육이 조금씩 움직여지는 시간이다.

가슴에는 호흡이 출렁거려 많은 생각들 담아도 자꾸 엉킨다.

종아리의 근육이 이완되고 호흡이 안정되면 당일 레이스에서 기록을 함부로 전망 할 수는 없지만

완주 할 수 있을지 여부를 가늠 할 수 있다.

남은 레이서에서 경거망동하지만 않는다면 무사히 결승선을 통과 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이 생기므로 조금은 상기되기도 한다.

 

 다음 4킬로미터는 무릎으로 뛰고 허리로 생각한다.

무릎에 힘이 꽉 차 있어서 아직은 뛸 만하다.

그렇지만 마라톤에 대한 두려움을 허리도 안다.

그렇기에 움찔움찔 속도를 내 보기도 하지만 이내 움츠리며 자신을 다독인다.

마라톤의 어려움은 여기에 있다.

힘이 있다고 함부로 뛸 수도 없으며, 그렇다고 너무 늦출수도 없는 인생이다.

적당하게 자신을 잘 알아가면서 뛰어야 한다.

빨리 가는 것만이 능사는 아니다.

어쩌면 천천히 가는 것이 더 알차고 값진 삶일수도 있다. 

빨리 뛰면 화려 할 수는 있겠지만, 여유로운 향기를 얻기에는 모자람이 많기 때문이다.

  

 다음 6킬로미터는 허벅지로 뛰면서 엉덩이로 생각한다.

아직 허벅지에 에너지가 남아 있으니 그런대로 뛸 만하지만 엉덩이에 생각을 담기에는 신경이 둔하다.

평소에 허벅지에 에너지를 많이 채워 놓았다면 이 구간에서 그리 어려울 것은 없다.

달려 온 거리보다 가야 할 길이 더 멀기 때문에 자칫 좌절 할 수도 있겠지만,

마라톤을 준비한 사람이라면 큰 무리없이 이겨 낼 수 있는 구간이다.

인생도 그러하다.

청년기를 충실하게 준비한 사람이라면 중년을 무리없이 맞을 수 있다.

 

다음 6킬로미터는 엉덩이로 뛰면서 허벅지로 생각한다.

레이스의 중반을 넘기는 시점이어서 작은 번민이 일기도 하지만,

허벅지에는 생각의 에너지를 많이 저장 할 수 있는 곳이 아니어서 잠깐잠깐 스치는 생각들을 그냥 흘려 보낼 뿐, 모을수는 없다.

하반신의 근육이 모두 이완되었지만, 엉덩이에는 아직 쓸 만한 에너지가 남아있다.

중년의 에너지는 노후의 밑거름이다.

지금 힘들다하여 다 써 버릴수도 없는 노릇이고, 노후를 생각하니 지금이 목마르다.

허벅지에는 그 생각만 들락날락거린다.

 

다음 7킬로미터는 허리로 뛰며 무릎으로 생각한다.

이제부터는 레이스의 종반이다.

에너지를 담을 수 있는 마지막 곳간이 허리이지만,  무릎에는 작은 생각도 담기 부족한 공간이다.

흔히 마라토너들이 마의 구간이라는 30킬로미터를 넘겨야 하는 구간이다.

평소에 아무리 많은 훈련을 하더라도 허리 이상으로는 에너지를 담지 못한다.

그것이 인간의 한계이며, 마라톤의 한계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이 구간에서 그동안 준비한 에너지를 다 쏟아내게 된다. 더 이상 비축할 공간이 없기 때문이다.

그런만큼 생각 할 겨를이 없을 뿐 아니라, 생각 할 필요도 없다.

오직 내 허리에 남아 있는 힘을 어떻게 효율적으로 쏟아 낼 수 있느냐만 생각한다.

 

다음 7로미터는 가슴으로 뛰고 종아리로 생각한다.

참 긴 시간을 달려왔다. 

가슴을 열고 정신적 에너지를 꺼내어 육체적 에너지를 대신한다.

정신적 에너지를 많이 축적한 사람들은 이 구간을 크게 두려워 하지 않는다.

허벅지에 마비가오고 목이 타 들어가도

꿋꿋하게 자신의 길을 달릴 수 있다.

그만큼 정신적 에너지도 육체적 에너지 못지않다는 것을 실감 할 수 있는 구간이다.

종아리에 담겨있던 생각들은 단순하다.

물론 다른 많은 생각들이 떠오르지만

그것들은 발자국을 디딜때마다 털려나가고

오직 마지막 결승선을 통과 할 수 있기만을 바라는 생각들만 종아리에 종알종알 매달린다.

 

마지막 3킬로미터는 머리로 뛰고 발로 생각한다.

마음은 결승선에 있고 발은 아직 갈 길이 남아있다.

다행인 것은

기어서라도 결승선을 통과하리라는 마음이 흐느적거리는 발바닥에 선명하게 찍힌다.

어떻게 온 길인데, 헛 수고는 할 수 없다.

반드시 결승 테이프를 가슴에 얹으리라.

아무리 각오를 다져도 쉽지는 않다.

길 가장자리에는 마지막 고통을 호소하는 사람들이 널부러지기도 한다.

 

마라톤에는 요행이 통하지 않는다.

오로지 자신이 준비한 만큼만 결과로 기록 될 뿐이다.

흔히들 마라톤의 여정을 인생에 비유한다.

인생에도 요행은 없다.

가끔 팔자에 없는 행운을 얻는 사람들이 있기도 하지만.

삶의 전체를 놓고보면 잠깐의 행운일뿐 아름다운 기억으로 기록되지는 않는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늘 요행을 꿈꾼다.

어쩌면 인간의 나약함이겠지만,

분명한 것은 순간의 요행으로 참 행복을 얻을수는 없다.

그것은 삶의 올 곶은 정의이며 아름다운 정석이다.

 

 

 

* 일     시 : 2009년 10월 25일

 

* 대 회 명 : 2009 조선일보 춘천마라톤

 

* 도전코스 : 풀코스

 

* 기       록 : 3시간 57분 58초(처음으로 Sub-4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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