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 바래봉
지리산 바래봉
파란 하늘하래
푸른색 오월의 쟁반을 놓고
정갈하게 붉은 철쭉을 얹어 세상에 내 놓는다.
천하일미다.
이렇게 멋진 요리를 받고져 먼 길을 달려왔지만.
아직은 격이 모자라 그저 송구스럽다.
멋진 요리를 대할때는 그 요리를 접할 수 있는 격이 있다.
먼저 마음가짐을 반듯하게 가져야하고
배가 고파도 허겁지겁 덤비지 않을 수 있는 인내심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요리를 만든 사람의 정성을 음미 할 수 있는 미각이 있어야 하며,
좋은 요리를 마음껏 칭찬 할 수 있는 배려가 있어야 한다.
그런데 우리는 그렇지 못했다.
허기에 지친 사람들처럼 떼로 몰려들어서
허겁지겁 덤비는 짐승 같았다.
자연이 만들어 놓은 멋진 요리를 맛 보기는 커녕
응접하는데 있어서 상식이 많이 모자란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몰려 들었다.
상식과 겸손이 제멋대로 비틀어졌다.
남보다 먼저
남보다 더 많이 먹으려고 덤비다가 결국 사고가 생겼나보다.
119 구조대원의 헬기가 쓰러진 사람을 구조한다.
지리산의 넓은 품으로 분홍색 철쭉이 수줍음을 털어내고 마음껏 향기를 뿜는다.
팔랑치에 철쭉이 군락지어 자리를 잡았던 연유가 더 재미있다.
예전에 팔랑치 산등성이에 양을 방목했었는데
양들은 그 좋은 식성으로 풀이며 나무며 마구잡이로 다 먹어 치웠단다.
그래서 다른 나무들은 다 고사되고
오직 독성을 품고 있어서 양들의 먹이가 되지 못했던 철쭉만이 살아남아서
오월이면 천하의 절경을 만들어내곤 한단다.
팔랑치 철쭉 군락지에 접근하기 전에 산 봉우리에서 내려다보는 풍경은 가슴 설레게 한다.
불타는 듯한 철쭉이 군무하듯 산등성이에 뿌려져 있는 모습에 잠시 탄성을 지어낸다.
그 순간 잠시 숨을 멎어도 행복하다.
염치 없는 식객들이 모여들었다.
자연이 정성껏 마련한 요리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어서
우왕좌왕하며 뜯어 먹으려는 폼이 자칫 객스럽다.
그들에게도 그만한 변명은 있다.
너무 많은 사람들이 한꺼번에 몰려들어서
팔랑치까지 도달하는데 많은 인내가 필요했다.
꼼짝않고 서 있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면서
지루한 산행을 이어왔다.
걔중에는 일부 되돌아 가는 사람들도 있었다.
놀이공원에 입장하는 사람들처럼 줄지어 등산하는 모습을 하늘에서 본다면
조롱거리가 될 듯하다.
아직 그리 많은 산을 올라보지는 못했지만
산에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줄지어 있기는 이번이 처음이다.
사람이 많다보니 먼지가 풀풀 날리고
반대편에서 오는 사람들과 좁은 산행로에서 교행하기도 쉽지 않다.
자칫
다툼이 생길수도 있는 상황이 연출되기도 했지만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산에 올라와서 다툴수는 없기에
서로가 조금씩 양보하는 모습을 볼 때는 많이 성숙한 모습이 대견스럽기까지 했다.
철쭉의 텃새에 밀려 나무들이 죽고
이제는 고사목이라는 이름으로 흔적을 남기고 있다.
나를 보자 반기며 아는척 한다.
그동안 외로운 산중에서 많이 외로웠나보다.
껍찔마져 다 벗어 버리고
저렇게 서 있는 모습에는
성스러움마져 깃든다.
분홍색 철쭉에 기대어 다소 외로워 보이는 고사목에는 또 다른 향기가 있다.
그들에게는 그들만의 삶의 방식이 있나보다.
허기에 허둥거리던 식객들이 배를 좀 채웠는지 이제는 좀 안정된 모습이다.
그렇다.
배고픈 사람에게는 음식이 최고의 선이다.
배고픈자에게 예의와 염치를 구하는건 무리였다.
배 부르면 없던 양보와 겸손도 생긴다.
양보와 겸손은 자유와 배려가 돋을 수 있는 토양이 된다.
우리는 한 때 자유를 찾기위해 목청을 돋운 시절이 있었다.
그 때는 몰랐다.
자유라는게 배 부르면 자연적으로 찾을 수 있다는 진리를 알지 못했다.
자연 속에 자유가 녹이 있다는 사실도 알지 못했다.
그래서 우리는 더 힘들게 살아왔는지도 모르겠다.
인간도 자연의 일부다.
우리는 이 단순한 진리를 망각하고 살아간다.
인간이 자연의 일부임을 깨달으며 살아간다면 세상이 그리 힘들지 않다.
맞다.
배고픔은 구속이고
배부름은 자유이다.
나는 자연속에서 마음껏 자유를 찾을 수 있다.
이렇게 아름다운 푸른 식탁에
향기 가득한 철쭉을 마음껏 안았으니 또 다른 자유가 필요치 않다.
이만하면 충분히 배 부르다.
세상의 진리가 어디 있냐고...
바로 여기가 세상의 진리이며 행복이다.
그것을 깨닫는데 부족함이 없는 천상의 세계...
바로 지리산 바래봉 능선이다.
팔랑치를 지나면서
속 없이 마음껏 흔들어대던 철쭉도 스스로 겸손해진다.
참 멋진 조화다.
철쭉군락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이어졌다면
우리는 쉽게 식상해졌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자연은 아름다움을 잘 안다.
아니다..
자연 그 자체가 아름다움이다.
건너편 천왕봉 등성이가 예사롭게 보이지 않는다.
저 듬직하고 믿음직스러운 눈으로 우리를 내려다 보고 있다.
얼마나 가소롭게 보였을까.
그렇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
은근한 미소만 지을뿐 말이 없다.
그래서 나는 산이 좋다.
며칠 지나면
다시 지리산을 찾을 계획이다.
물론 함부로 덤비지는 않을것이다.
충분히 준비하고
정갈게 마음을 닦고
겸손하게 다가 갈 것이다.
언제봐도 내 편인 산.
당신을 만날때마다 내 마음의 겸손이 하나씩 늘어갔으면 좋겠다.
1. 일 시 : 2009년 5월 10일
2. 산행로 : 정령치 - 고리봉 - 두운봉 -팔랑치 철쭉 군락지 - 바래봉 - 운봉리
3. 산행시간 : 6시간
4. 위 치 : 전북 남원시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