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
가야산
내 삶에 향기가 있었을까.
혹시나 하는 마음에 향기를 찾아 길 떠난다.
충남 서산에 자리한 가야산은 넓은 들판에 든든한 바람막이처럼 길게 드러누워 있다.
오랜만에 오르는 산이라..
연일 쏟아 부었던 술독이 빠지면서 향기를 감춘다.
마애삼존불에서 시작된 들머리에서 수정봉까지 가쁜 호흡을 몰아세우며 �기듯 오른다.
지난 가을 미처 낙엽을 지우지 못한 풀 한포기..
앞으로 닥칠 추위를 어떻게 견뎌내려고 아직 연한 녹색을 부둥켜 안고 있을까.
장하다기 보다는 애처롭다.
너에게 계절은 어떤 의미였을까.
그냥 스치듯 지나가는 가슴앓이 같았을까.
수정봉에서 옥양봉으로 이어가는 능선길에 요란한 삶의 흔적들이 나부낀다.
무슨 아픔이었을까.
가야산을 관통하는 고압송전철탑공사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야산을 지키려고 거품을 물고 싸웠던 전투의 흔적들이다.
누가 옳고 거를까를 생각해봤다.
알수가 없다.
삶이란 어차피 제로섬 게임인 걸...
옥양봉에 이르면 시야가 확 트인다.
아쉽게도 일기가 불순하여 시야가 흐려서 더 넓은 들판을 가슴에 새길 수 없음이 안타깝다.
비록 험하거나 높은 산은 아니지만..
세상을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에게는 아름다움을 쉽게 내어주지 않는가보다.
석문봉 정상에 다다랐다.
가야산의 최 정상은 가사봉이지만 우리의 행로는 석문봉에서 하산길을 찾는다.
불순한 일기를 탓하기에는 내 마음이 편하지 않다.
사실 저 너머 태안 바닷가에는 유조선 침몰로 완전히 폐허가 되었다.
연일 수만명에 이르는 자원봉사자들이 기름 방제작업에 열중이다.
조금이나마 도움은 못 될 망정 이렇게 향기를 찾겠다고 산에 올랐으니..
얄팍한 이기심을 어떻게 변명하오리까.
진정으로 삶의 향기를 찾고 싶었다면 태안 바닷가로 갔어야 한다.
산에 올라서 자신을 버리니 어쩌니 하는 말들은 몰염치한 사치다.
더 이상 변명하지 않아야겠다..
안테나가 우뚝 솟아 있는 저 산이 가야산 최고봉인 가사봉이다.
구름을 치마처럼 두르고 얼굴을 내어 보이지 않는다.
보현선원 쪽으로 하산한다..
산 등성이에서 날머리를 잘 못 찾아 30분간 헤매었다.
누굴 탓하겠는가.
내 탓이다.
* 일 시 : 2007년 12월 23일
* 산 행 로 : 마애삼존불상 - 수정봉 - 옥양봉 - 석문봉 - 사잇고개 - 일락산 - 보현선원 - 개심사
* 산행시간 : 4시간
* 위 치 : 충남 서산, 예산군 일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