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악산/공룡능선
설악산..
가을은 벌써 떠났다.
온 줄 모르게 떠나버린 가을을 찾아 오색약수에서 어둠을 찢으며 설악의 문을 열었다.
새벽 2시 30분, 세상은 조용하다..
그저 어리석은 산꾼들의 거친 숨소리만 천지를 혼돈스럽게 흔들어댄다.
멀리 동해바다에 오징어잡이 배들이 밤을 잊은채 불을 밝히고 있다.
하늘엔 별이 총총 들여박혔다.
빈 틈을 찾아 내 마음에 묻어 두었던 별을 꺼내어 꽂아보려해도 어색하기만하다.
어디하나 내가 덧칠 할 곳은 없다.
그것이 자연이다.
8부능선쯤 올랐을까.
바람이 거세진다.
별이 바람에 쏟아진다.
낙엽을 떨군 앙상한 나무가지에 걸려 반짝거린다.
별은 바람이 부는대로 요량없이 흔들린다.
오색약수 들머리에서 시작한 등산은 3시간만에 대청봉 정상에 도착했다.
대청봉은 이미 겨울이다.
체감온도 영하 15도쯤 된다.
동해에서 시작된 성난 황소바람이 울산바위에 부딪쳐서 칼바람이 되었다.
매서운 칼바람이 대청봉을 휘갈긴다.
몸을 옴짝달싹 할 수가 없다.
땀이 식고 이내 몸은 얼어간다.
세상을 다 버리고 싶었다.
왜 설악의 정상에 올랐는지 이유를 알 수도 없다.
하산길을 서둘렀다.
중청산장에서 잠시 추위를 피했다.
대청봉을 뒤돌아본다.
나를 잊어버렸다.
산에 오른 이유도 잊어버렸다.
다시 하산을 서둘렀다.
희운각대피소 못 미쳐서 여명이 밝아온다.
추위도 누그러진다.
세상 이렇게 살아가면 되나보다..
그래도 두렵다.
말로만 듣던 공룡능선길에 내 몸을 싣는다.
이미 체력이 많이 소진되었다.
희운각에서 도시락으로 아침식사를 했다.
배고프고 추워서 밥도 넘어가지 않는다.
컵라면 하나 사서 온기를 채웠다.
배가 든든해진 만큼 공룡능선길 들머리 산행은 힘든다.
가슴이 두근거린다.
공룡과의 만남은 내게 전율이다.
설악이 안고 있는 정경들이 가슴속에 전착된다.
벅찬 가슴이 쏟아질까 두렵다.
가슴이 깨진들 무엇을 두려워할까.
멀리 울산바위도 마중을 왔다.
참 잘생긴 놈이다.
공룡능선에서 조망되는 경치는 천하의 절경이지만...
그 능선을 넘어가기에는 보통 힘든게 아니다.
한 고개를 넘어면 또 한 고개다.
한 두개 넘을때는 이정도는 되어야 한다며 자위했다.
그러나 피로가 쌓이면서 내 의지력도 차츰 희미해져간다.
체력도 급격히 떨어져간다.
멀리 보이는 저 바위꼭대기 계곡을 넘어야 한다.
그러면 끝이 보일까.
그것은 착각이었다.
다시 또 하늘에까지 닿아 있는 저 고개를 넘어야 한다.
저 고개만 넘으면 나의 고행을 끝낼 수 있으려나.
또 바위고개가 도사리고 있다.
지친다.
마음이 먼저 지친다.
한숨도 길어진다.
내가 왜 여기 와 있는걸까.
돌아갈 수도 없다.
어쩌랴..
앞으로만 가야만 하는 이 길은 나의 인생일까.
고개 넘어 또 고개
지치도록 반복된다.
공룡의 품에 안기길 원했던 건 사치였다.
이쯤해서 산행이 끝났으면 좋겠다.
벌써 얼음이 꽁공 얼었다.
설악은 이미 나뭇가지의 낙엽을 다 털어내고 겨울준비를 다 끝냈다.
올해 처음 만나는 얼음이라
두려움보다는 생경스러움에 피로을 덜어낸다.
이 고개만 넘으면 이제 끝날라나..
마지막 고개다.
많이 지쳤지만 희망이 있다.
다시 힘을 모아서 마지막 행군을 재촉했다.
지리산이 어머니의 품과 모습을 많이 닮아 있다면
설악은 아버지의 성정을 많이 닮았다.
벗이여..
설악을 이야기할때 공룡능선의 안부를 모른척하지 말고
삶이 지치고 힘들때,
모든걸 잊고 여기 설악 공룡능선의 품에 안겨보라.
나는 무어라 더 말을 할 수가 없다.
그냥 공룡의 품에 안겨 젖 달라고 졸라보려무나.
그대의 인생은 또 다른 빛으로 파장되리라.
공룡능선의 마지막 봉오리에서 설악의 바람소리를 담아왔습니다.
벗님들..
설악의 신선함과 향기로움을 마음껏 담아보세요.
* 일 시 : 2007년 10월 21일
* 산 행 로 : 오색약수 - 대청봉 - 중청봉 - 소청봉 - 소청산장 - 희운각대피소 - 무너미고개 - 공룡능선
- 오세암 - 영시암 - 백담사 - 용대리
* 산행시간 : 12시간
* 위 치 : 강원도 양양군, 속초시 ,인제군 일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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